“애가 무서워서 잠이나 자겠나.”
명문 한음국제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한결(성유빈)을 생각하며 아버지 호창(설경구)이 혼잣말을 한다.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해서다. 한결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다. 또 다른 가해자의 아버지는 피해 학생을 두고 “원래 좀 문제가 있었다”고, 또 다른 가해자의 아버지는 “문제 있는 애들은 부모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피해자는 학교 근처 호수에 몸을 던져 의식불명 상태다.
피해 학생은 담임 교사 정욱(천우희)에게 남긴 유서에서 4명의 아이들을 가해자로 지목한다. 지목된 아이들의 부모는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담임 교사 정욱의 양심 선언으로 피해자 엄마(문소리)는 아들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다. 가해자 부모들 사이에선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음모가 시작된다.
학폭을 주제로 다룬 많은 영화들은 피해자의 고통에 집중한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동명의 연극 원작으로, 가해자들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학폭 문제를 가해자 부모들의 시선에서 그리는 시도, 설경구 천우희 문소리 등의 연기파 배우들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됐다. 5년 전 촬영을 마쳤지만 출연 배우 오달수의 미투 논란과 코로나19 등으로 개봉이 연기됐다.
18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시사회와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김지훈 감독은 “10여년 전 접한 원작이 좋았다. 학부모가 되면서 우리 아이가 피해자가 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다가 ‘가해자가 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촬영한지 5년이 지났지만 학폭 문제로 인한 아이들의 고통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게 마음 아프고, 영화가 관객들을 만나 같이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영화에선 가해 학생들이 노래방에서 친구를 발가벗기고 때리거나, 목에 개 목줄을 묶어 끌고다니며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핥아먹게 하는 등 폭력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김 감독은 “연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어려웠다. 아이들과 그런 장면을 찍는 것 자체가 연출자로서 고통스러웠다”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지옥같은 장면들이었고, 당시 배우들에게 내색은 못했지만 미안했다”고 돌이켰다.
학폭 가해자로 지목된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변호사 아버지 역을 맡은 설경구는 “솔직히 실제 상황이라면 많은 갈등이 있을 것 같다. 영화에선 상황에 충실하려고 했다”며 “촬영장에선 아들 한결을 끝까지 믿었고, 믿고 싶은 마음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이어 “평소 오누이처럼 지내는 문소리와 촬영장에서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고 각자 역할에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천우희는 사건을 은폐하는 대가로 교장(강신일)에게 정교사 자리를 약속받는 기간제 교사 정욱을 연기했다. 천우희는 “정욱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기에 관객과 가장 접점이 있는 인물이다.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닌 제3자로 있을 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생각하게 하는 인물”이라며 “그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할 것이라고 쉽게 답변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손자를 지키기 위해 정의에 눈감는 전직 경찰청장 역을 맡은 김홍파는 “마지막 재판 장면에서는 고개를 들라는 감독의 요구에도 실제로 고개를 들 수 없어 파묻고 있었다”며 “학폭이 아이들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어른들이 ‘우리는 뭘 위해 태어났는가’ ‘자식들에게 뭘 주면서 살았는가’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