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어쩌다’의 재앙

입력 2022-04-18 12:14

단지 가장 대통령답게 보인다는 이유로 당선된 미국 대통령이 있다. 바로 제29대 대통령 워렌 하딩이다. 그는 부유한 아내의 도움으로 상원 의원이 되었고, 어쩌다 보니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워렌 하딩은 평소 대통령이 되기 위한 야심을 가지고 준비를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땅히 내세울 후보가 없던 공화당은 화려한 외모를 가진 워렌 하딩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그의 극강 외모와 뛰어난 언변은 특히 여성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마침내 빨갱이 소동, 백인과 흑인 간의 불화 등으로 사회가 어수선한 가운데 치러진 1920년 대통령 선거에서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의 당선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재앙이 되었다. 그의 잘못된 인사는 측근들의 전횡과 비리로 귀결되었고, 우유부단한 성격은 미국 경제를 혼란에 빠트렸다. 결국 대공황을 부른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그는 당선된 이후 방탕한 생활과 정치를 이어가다 임기 2년 만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미국 국민은 처음엔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으나, 차츰 그의 개인 비리와 부도덕한 언행이 연이어 폭로되면서 반전을 맞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 평가에서 늘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소위 ‘워렌 하딩의 오류’라고 부른다. 이런 오류는 정치판에만 있는 현상은 아니고 직장에서 사람을 뽑을 때나 하물며 연애를 할 때도 나타난다. 대부분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면서도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보이는 것에 집착할 때 이런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런 오류를 피하려면 외모나 겉으로 드러난 조건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여러 각도에서 객관적으로 대상을 평가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또한, 무조건 한 편의 말만 듣기보다는 상대편의 주장도 경청하며 다양한 정보를 통해 다각도로 판단하는 게 필요하다.

‘보기에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 말이 늘 정답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사장, 어쩌다 보니 이사, 또 어쩌다 보니 대통령, 어쩌다 보니 장관은 본인은 물론이고 조직의 구성원까지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어쩌다’가 우리 역사에도 있었다. 인조는 쿠데타를 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어쩌다 왕이 되었다. 왕이 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자신을 옹립한 신하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왕다운 배짱도 없었고 그저 신하들 눈치보기에 급급했다. 왕이 무능하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리가 만무했다. 이런 상태에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맞았다.

병자호란은 그 기간이 불과 2개월에 불과했지만, 인조 자신과 백성들의 피해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를 하며 치욕을 겪어야 했고, 죄 없는 수많은 백성은 죽거나 끌려갔다.

이처럼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주변이 어지러운 상태에서 ‘어쩌다’ 맡은 막중한 책임은 자신의 패가망신에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 빠뜨리게 된다.

정권교체를 앞두고 차기 정부 인선이 한창인 가운데, 6월 1일에 치러질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열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 혹시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쩌다’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국민을 위해 부디 멈춰주길 바란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