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해·조현수, 지구대 500m 앞 ‘사람 속’에 숨었다

입력 2022-04-17 18:19
'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왼쪽)·조현수씨가 지난 16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 이은해(31)와 조현수(30)가 경찰서 지구대로부터 불과 500m 떨어진 오피스텔에 은신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들이 전략적으로 ‘도심 속 은신’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17일 인천경찰청 등에 따르면 이씨와 조씨는 16일 낮 12시 25분쯤 경기도 고양시 지하철 3호선 삼송역 인근 오피스텔에서 체포됐다. 지난해 12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이 오피스텔은 2000세대가 넘는 대형 오피스텔 단지다. 직선거리 500m에 경찰서 지구대가 있고 대형 쇼핑몰인 ‘스타필드 고양’도 위치해 있어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 중 하나다.

별다른 흔적은 남기지 않고 수도권의 대형 오피스텔에 숨어지낸 것을 본 한 강력계 형사는 “사람 속에 숨었다”고 평했다. 경찰 관계자는 “지명수배자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곳에 숨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개수배로 널리 얼굴이 알려진 상황에서 인적이 드문 외곽에서 눈에 띄는 것보다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이 숨기에 더 수월했을 것이란 얘기다. 해당 지역은 이씨 주거지였던 인천과도 가깝다. 두 사람이 노출 위험성이 있는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굳이 먼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을 수 있다.

특히 해당 오피스텔은 건물 내에 편의시설 대부분을 갖추고 있는 데다 입주가 마무리되지 않아 주변 시선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입주민 최모(37)씨는 “무인 편의점부터 반찬 가게, 세탁소, 미용실까지 거의 모든 편의 시설이 단지 안에 있어서 밖에 나가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지하 1층을 제외한 지하 주차장에는 차가 거의 없어서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고 주차장을 통해 밖을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조력자 존재 여부도 조만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부터 수배 중이었던 만큼 본인들 명의로 오피스텔 계약을 하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다만 체포 현장에는 이씨와 조씨 외에 다른 인물은 없었다고 한다. 이들은 오피스텔 내에서 현금이나 다른 사람 명의 카드로 배달 음식 등을 결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경찰은 제보와 수사 첩보 등을 토대로 지난 13일 이들의 은신처로 고양시 일대를 특정했다. 오피스텔 근처 이면도로에서 이씨와 조씨로 추정되는 인물의 CCTV도 확보해 수사망을 좁혀갔다. 경찰은 이씨의 아버지에게 “딸의 자수를 설득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씨를 설득한 아버지는 경찰에 자수 의사를 대신 전했다.

이씨 검거 현장에는 그의 아버지도 동행했다. 경찰은 고층 오피스텔 내부로 무리하게 진입할 경우 이씨와 조씨가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이씨 아버지를 통해 이들이 오피스텔에서 스스로 나오도록 설득했다. 이씨는 자수 의사를 아버지에게 밝히면서 “죽고 싶다”는 말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양=이의재 박재구 기자, 김판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