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인구, 공실많은 오피스텔 은신처 삼은 이은해

입력 2022-04-17 16:13 수정 2022-04-17 16:51
'계곡 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왼쪽)·조현수가 지난 16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유동인구가 많은 도심 지하철역 인근의 입주를 갓 시작한 공실 많은 고층 오피스텔로 도주했던 이른바 ‘계곡 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여)와 공범 조현수(30)는 경찰의 좁혀오는 포위망과 가족 설득 전략으로 결국 덜미를 잡히게 됐다.

이씨와 조씨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숨어지낸 곳은 지하철 3호선 삼송역 인근의 대형 오피스텔 건물이다. 이곳은 지난해 12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신축 건물로 삼송동 일대에서 유일하게 2000세대가 넘는 대형 오피스텔 단지다.

이 오피스텔은 10평 미만의 소형 평수가 대부분으로, 월세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 60만원대, 전세는 2억원대, 매매는 3억원대다.

갓 입주가 시작된 이 오피스텔의 30~40%는 비어있는 상태였다. 인근에는 지하철 3호선 삼송역이 있어 출퇴근 시간에는 유동인구가 많아 이씨와 조씨는 이 시간대를 피해 늦은 밤시간에만 이동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오피스텔의 공동현관은 주민카드 등을 이용해 입주민들만 출입할 수 있고 외부인들의 출입을 통제해 이씨와 조씨가 주변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숨어지내기 적합한 장소였다.

경찰은 이씨와 조씨가 인적이 드물어 비교적 눈에 잘 띄는 도심 외곽이 아니라, 유동인구가 많아 눈에 띄지 않고 보안도 강한 도심 중심의 오피스텔을 구해 지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와 조씨가 거주했던 오피스텔에서 편의점을 하는 한 점주는 “이 오피스텔에 거주했으면 우리 편의점을 한 번쯤은 왔다 갔을 것 같다”면서 “편의점에 오는 손님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다 보니 특별히 인상이 기억에 남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와 조씨가 이 오피스텔에서 검거된 사실을 알게 된 주민들은 깜짝 놀라며 두려워했다. 이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한 입주민은 “오피스텔이다 보니 더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마스크를 쓰다 보니 누군지 알 수도 없다”며 “같은 오피스텔이면 오다가다 만났을 것으로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4달간 도주 행각을 벌인 이씨와 조씨는 검찰이 공개수배한 이후에 이 오피스텔 인근 삼송역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되면서 꼬리를 밟혔다.

경찰은 이씨와 조씨의 수사 서류와 진술 등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양시 일대에 은신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포위망을 좁히던 중 삼송역 인근 CCTV에서 이들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두 명을 포착했다.

경찰은 이들의 은신처를 삼송역 인근 오피스텔 단지쯤으로 특정해 포위망을 좁히고 정확한 장소를 파악하기 위해 탐문 조사를 하면서 목격자를 확보에 노력했다. 그러나 시민들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의 이유로 목격자 확보는 성과가 없었다.

이에 경찰은 지명수배 이후 신뢰 관계를 쌓은 이씨의 아버지와도 접촉해 딸의 자수를 설득했다. 경찰은 평소 이씨가 딸을 아껴와 자신의 딸을 데리고 있는 부모에게 한 번쯤은 연락할 것이라고 판단, 그 결과는 주효했다. 이씨는 지난 16일 아버지에게 “죽고 싶다”고 전화했고, 이씨를 설득한 아버지는 경찰에 “딸이 자수하려 한다”고 알렸다.

경찰은 이날 오후 12시25분쯤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의 오피스텔에서 이씨와 조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 이씨와 조씨 체포 현장에는 이씨의 아버지도 동행했다. 경찰은 아버지에게 “죽고 싶다”고 토로한 이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이씨 아버지를 통해 오피스텔에서 스스로 나오도록 설득했다. 별다른 저항 없이 검거된 이씨와 조씨는 4개월간 도주 생활로 야위고 초췌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머물렀던 오피스텔 내부에서 두 사람이 사용한 휴대전화도 발견했다. 잠적 기간 이씨와 조씨 명의 휴대전화의 사용 내역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져 대포폰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경찰은 대포폰과 오피스텔 임대 등을 도와준 조력자에 대해 이씨와 조씨를 상대로 조사 중이다.

이씨는 내연남인 조씨와 함께 2019년 6월 30일 오후 8시 24분쯤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남편 A씨를 물에 빠져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A씨 명의로 든 생명 보험금 8억원을 노리고 범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같은 해 2월과 5월에도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 물에 빠뜨려 A씨를 살해하려 한 혐의 등도 받는다.

이씨와 조씨는 지난해 12월 13일 인천지검에서 1차 소환조사를 받은 다음 날 2차 조사에 불응한 뒤 도주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달 30일 이씨와 조씨를 공개수배하며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경찰은 추적 전담팀을 기존 11명에서 42명으로 늘리는 등 수사 강도를 높인 결과 17일 만에 이들을 검거하게 됐다.

고양=박재구 기자 park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