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논란의 중심에 섰던 러시아 출신 스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22일(현지시간) 개막하는 모나코 몬테카를로 오페라극장의 ‘마농’으로 돌아온다. 네트렙코는 5~7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 축제에도 참석이 확정됨으로써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과 러시아 사이의 줄타기에 성공한 듯한 모습이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오페라극장은 22~30일 4회 무대에 오르는 푸치니 오페라 ‘마농’에 병으로 출연하지 못하게 된 이탈리아 소프라노 마리아 아그레스타 대타로 네트렙코가 출연한다고 1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네트렙코의 남편인 아제르바이잔 출신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도 같은 작품에서 상대역인 데 그리외 역으로 나올 예정이다. 네트렙코는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갑작스럽게 몬테카를로 오페라 극장 데뷔를 하게 돼 매우 기쁘다. 남편 유시프와 함께 하게 돼 더 특별하다. 남편과 내가 처음 만난 것이 2014년 로마 오페라의 ‘마농’에서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네트렙코 같은 스타가 오페라극장 데뷔 무대를 대타로 출연하는 사례는 거의 없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국제 무대에서 퇴출 위기를 경험한 네트렙코가 고개를 숙이고 출연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네트렙코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클래식계에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함께 ‘친(親)푸틴’ 예술가로 꼽히며 잇따라 공연이 취소됐다. 이에 네트렙코는 지난 2월 말 공연 중단을 선언했다가 서방의 여론이 예상보다 악화되자 지난달 30일 전쟁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활동 재개를 선언했다. 유럽 무대가 조국인 러시아 무대보다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무시하기 어려웠던 듯하다. 네트렙코는 당초 5월 25일 러시아 메조 소프라노 엘레나 막시모바 등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필하모니 드 파리 협연으로 서방 무대에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모나코 공연으로 한 달 정도 더 빨라지게 됐다.
당초 네트렙코의 반전 성명에 대해 서방 공연계는 불충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나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메시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은 네트렙코와 대화를 한 뒤 출연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국가두마(의회) 의장이 네트렙코를 비판하는가 하면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발레극장이 6월 예정됐던 네트렙코의 공연을 취소하면서 서방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실제로 모나코 몬테카를로 극장은 뉴욕 타임즈에 “안나 네트렙코는 2주 전 전쟁 그리고 푸틴과의 관계에 대해 성명을 발표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분명한 입장을 취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두마 의장으로부터 ‘조국의 적’으로 선언됐으며 노보시비르스크 극장은 그녀의 출연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오페라극장에 앞서 지난 8일에는 7~8월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 오페라축제인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이 네트렙코를 ‘아이다’(7월 8·16·28일)와 ‘투란도트’(8월 4·7·10일)에 캐스팅했다고 발표했으며,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이 13일 네트렙코가 막시모바와 함께 5월 27일 콘서트에 출연한다고 발표했다.
클래식 팬들 사이에선 네트렙코의 복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네트렙코는 반전 성명과 러시아에서의 백래시 이후 서방 클래식계로부터 긍정적인 신호를 받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극장에서 6월 열릴 예정이었다가 무기한 연기됐던 네트렙코 리사이틀이 내년 1월 개최로 확정됐으며, 함부르크 엘프 필하모니홀에서의 리사이틀 역시 한 차례 연기 끝에 9월 7일로 확정됐다. 다만 이들 콘서트는 극장 주최가 아니라 현지 기획사 주최다. 프랑크푸르트 공연을 주최하는 라인 마인 콘서트는 성명을 통해 “주최자인 우리도 현재 정치적 사건에 충격을 받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음악이 사람들을 연결하는 다리인 만큼 정치적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는 안된다고 믿는다”고 발표했다.
한편 네트렙코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주최 ‘백야의 별’(5월 27일~8월 15일) 축제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러시아 타스 통신이 마린스키 극장을 인용해 7일 확인했다. 출연 날짜는 미정이지만 원래 예정됐던 대로 참석한다는 것이다.
마린스키 극장의 ‘백야의 별’ 축제는 1993년 부활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백야 축제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두 달여 동안 마린스키 극장과 콘서트홀에서 거의 매일 공연이 열린다. 원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지만, 게르기예프가 주도적으로 나섬으로써 전 세계 오페라·발레·클래식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국제적 축제가 됐다. 다만 올해는 서방 아티스트는 거의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네트렙코의 경우 ‘백야의 별’ 무대에 자주 출연했는데, 러시아 출신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발탁해 서방 무대에 세운 게르기예프와의 오랜 인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반전 성명 발표한 이후엔 러시아에서 비난받으며 공연이 취소돼 네트렙코가 진퇴양난에 빠진 듯했으나 ‘러시아 음악계의 차르’ 게르기예프가 그를 무대에 세움으로써 러시아에서의 비난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