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6일 오후 4시10분쯤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공개수배된 이은해(31·여)씨와 내연남 조현수(30)씨를 검거해 고양경찰서에 인치했다고 밝혔다.
인천청 광수대 관계자는 “16일 낮 12시25분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소재 오피스텔에서 가평 계곡 살인사건의 공개 수배자 이은해와 조현수를 검거했다”면서도 검찰과의 조율이 필요한듯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이른바 ‘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조현수씨가 지난해 12월 검찰 수사를 받다가 도주한 뒤 지난달 30일 공개수사로 전환한 것이 이들의 자수를 유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천지검과 인천경찰청은 지난 6일 ‘검·경 합동 검거팀’를 구성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고,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약칭 검수완박)을 해서는 안되는 대표살례로 이 사건이 회자되면서 전국민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의 검거에는 이씨 아버지가 딸의 자수 의사를 경찰에 전달하는 등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씨는 경찰의 검거망이 좁혀오자 이날 오전 아버지에게 자수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 아버지는 “딸이 자수하려고 한다. 오피스텔이 (서울지하철 3호선) 삼송역 근처라고 한다”며 은신처의 대략적인 위치를 경찰에 알려줬다.
이미 은신처로 사용 중인 오피스텔 건물을 파악하고 탐문을 하던 경찰은 이씨의 아버지를 통해 이들에게 오피스텔 건물 복도로 스스로 나오도록 설득했다.
오피스텔 건물 복도에는 조씨 혼자 나왔고, 수사관이 조씨를 따라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 이씨도 체포했다. 당시 이 오피스텔에는 이씨와 조씨만 있었으며 조력자는 없었다.
이들은 그동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듯 비교적 야윈 상태였고, 체포 당시 초췌한 모습이었다. 은신처로 사용된 오피스텔 내부에는 페트병에 담긴 생수가 3∼4상자 쌓여 있었으며 내부는 집기류도 거의 없이 정돈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들이 은신한 오피스텔은 서울지하철 3호선인 삼송역 인근에 있다. 삼송역 주변은 대형 쇼핑몰과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해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다.
경찰은 이씨와 조씨가 인적이 드물어 비교적 눈에 잘 띄는 도심 외곽이 아닌 도심 한가운데에 오피스텔을 구해 숨어 지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체포된 이씨와 조씨는 이날 오후 4시 10분쯤 경찰 승합차를 타고 고양경찰서에 도착했다.
이씨는 검정 모자를 쓴 채 회색의 긴 점퍼를 입고 있었고, 조씨도 모자에 검은색 재킷을 입은 모습이었다. 둘 다 모자를 쓴데다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이들은 “범행 인정하냐. 유족에게 할 말은 없느냐”는 취재진의 잇따른 질문에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이씨와 조씨를 고양경찰서에서 넘겨받아 인천지검으로 압송했으며 도주 경위 등을 조사한 뒤 이르면 17일이나 늦어도 18일에는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씨와 조씨는 미리 법원에서 발부받은 영장에 의해 체포했기 때문에 48시간 안에는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내연남인 조씨와 함께 2019년 6월 30일 오후 8시24분쯤 경기도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남편 A씨(사망 당시 39세)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들이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A씨에게 계곡에서 스스로 다이빙을 하게 유도한 뒤 구조하지 않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같은 해 2월과 5월에도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 물에 빠뜨려 A씨를 살해하려 한 혐의도 받고 있다.
피해자가 사망하기 전 계곡에서 함께 물놀이한 조씨의 친구 B씨(30)도 살인 등 혐의를 받고 있다. 전과 18범인 그는 다른 사기 사건으로 이미 구속된 상태다.
검찰은 이들이 A씨 명의로 든 생명 보험금 8억원을 노리고 범행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사건은 SBS 시사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 걸려온 한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2020년 3월 보험사 분쟁 관련 제보를 접수하던 중 한 여성의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자신 등에게 남긴 사망 보험금을 보험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게 제보의 핵심 내용이었다. 제보자는 바로 ‘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 이은해씨였다. 이씨는 당시 방송사에 “관할서에서 익사로 내사 종결했는데, 보험금을 주기 싫어 온갖 트집을 잡고 있다”고 제보했다.
이번 사건은 처음에는 수영에 미숙한 남성이 물놀이 중 숨진 단순 변사로 마무리될 뻔했다. 윤씨 사망사건을 처음 조사한 가평경찰서는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하고 같은 해 10월 단순 변사사건으로 내사 종결했다.
이씨는 같은 해 11월쯤 보험회사에 남편의 생명보험금을 청구했지만, 보험사는 사기 범행을 의심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보험금 수령이 뜻대로 되지 않자 이씨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보험사의 ‘만행’을 고발한다며 2020년 3월 방송사 여러 곳에 천연덕스럽게 직접 제보했다.
하지만 이씨 주장이 여러 측면에서 석연치 않은 사실을 파악한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2020년 10월 ‘가평계곡 익사 사건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내보냈다.
2019년 11월 유족 지인의 제보를 토대로 재수사를 벌이던 일산서부서도 방송 두 달 뒤인 2020년 12월에 살인과 보험사기 미수 혐의를 적용해 이씨와 조씨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이들의 주거지 관할청인 인천지검은 이들의 추가 혐의도 찾아내면서 인명을 경시한 황금만능주의가 만들어낸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혀내게 됐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