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내사종결 의견을 그대로 처리한 건 제 잘못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야말로 검수완박과 무관하지 않다. 검사가 경찰 수사 내용을 오로지 서류만 보고 판단할 때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놓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다.”
3년 전 ‘가평 계곡 살인사건’ 당시 피해자 윤모(당시 39세)씨의 죽음을 단순 변사로 종결했던 안미현 전주지검 검사(사건 당시 의정부지검)가 15일 페이스북에서 이같이 말했다.
자신이 경찰의 내사종결 의견대로 사건을 끝낸 것은 잘못이지만, 이는 검찰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없는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했다는 취지다. 안 검사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와 더욱 동떨어진 검수완박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안 검사는 이날 계곡 살인사건은 검수완박과 무관하다는 취지의 ‘팩트체크’ 기사를 공유하면서 이 같은 논리를 전개했다. 계곡 살인 사건은 경찰은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았고 검사가 단순종결했던 만큼 검수완박과는 무관하다는 게 해당 기사의 골자였다. 경찰이 무능해서 변사로 종결했다는 세간의 관점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안 검사는 2018년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을 수사하던 중 기자회견을 열고 대검찰청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당시 외압 의혹 사건은 결국 무혐의로 결론 났다.
“진심으로 사과… 변사사건 단계, 보완수사 불가능했다”
안 검사는 우선 “저의 무능함으로 인해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이 묻힐 뻔했다. 피해자와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이 없다”고 사과했다.그는 “부끄럽지만 이 사건이 보도됐을 때 사건 발생 장소와 시기에 비춰 당시 의정부지검 영장전담 검사였던 제가 변사사건을 지휘했겠구나 짐작했다”며 “하지만 어렴풋이 성인 남성이 아내·지인과 함께 계속에서 다이빙을 해 사망한 사건이 있었던 정도로만 기억이 났다. 피해자의 이름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면서 “경찰이 변사사건 수사를 하고 기록만 받다보니 사건 당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진술도 듣지 못하고 서류에 매몰돼 경찰의 내사종결 의견대로 처리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고 말았다”고 했다.
안 검사는 “변사사건 단계라 검찰에 사건이 송치되기 전이어서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가 이뤄질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검수완박 무관치 않아… 서류만 보면 실체적 진실 놓쳐”
안 검사는 “그래도 이 말씀은 드려야 할 것 같다. 이 사건이야말로 검수완박과 무관하지 않다”며 사과에 이어 소신 의견을 밝혔다.그는 “검사로 하여금 경찰이 수사한 내용을 오로지 서류만 보고 판단하게 했을 때, 검사가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만나보지도 않은 상태에서는 검사에게 영장청구권과 수사지휘권이 있어도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행히 검수완박 전에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고 본다”며 “검찰이 경찰보다 유능하다는 게 아니고, 경찰만이 아니라 검찰도 실체관계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수완박 논란을 검찰과 경찰의 소모적 논쟁이 아닌 형사사법체계의 선진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계곡 살인사건은 의정부지검에서는 단순변사로 종결됐지만, 이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이후 피해자 유족 고발로 일산서부경찰서가 ‘보험사기’ 수사에 착수했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용의자 이은해와 공범 조현수의 ‘살인’ 혐의를 최초 발견했다. 이후 사건을 넘겨 받은 인천지검은 압수수색 등을 거쳐 피해자 사망 사건 전 ‘복어 독 살인미수’ ‘낚시터 살인미수’ 정황을 추가로 밝혀냈다. 법조계에서는 경찰과 검찰, 보험사와 언론 등의 상호보완 작용을 통해 이뤄진 결과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안 검사는 “억울한 피해자의 죽음을 ‘국가수사권 증발’ 논의에 언급하게 돼 유족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며 “반드시 이은해 조현수가 검거되길 기도한다”고 했다.
아울러 “경찰과 검찰 모두 악랄한 범죄자를 잡고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며 “경찰과 검찰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경찰과 검찰이 맞서야 하는 것은 악랄한 범죄이지 서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