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오모(28)씨는 최근 10%가량 손실을 보고 삼성전자 주식을 처분했다. 증권사 계좌에 있던 돈을 끌어모아 연이율 2%대 예금통장을 개설했다. 오씨는 “지난 2년 동안 어디에 넣어도 주가가 올랐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하락장이 오히려 정상적이라고 본다”며 “대장주마저 떨어지는 상황에서 향후 1~2년 동안 주식을 통해 꾸준한 수익을 올릴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원 문모(26·여)씨는 최근 15% 이상 손해를 본 상황에서 삼성전자 주식 매입을 중단했다. 그는 그동안 목표주가 10만원이라는 증권사 전망을 믿고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이 회사 주식을 샀었다. 문씨는 “떨어지는 칼날을 손으로 열심히 막고 있는 것 같았다”며 “대신 5% 이상 이자를 지급한다는 적금 상품을 들었다”고 말했다
코스피를 대표하는 삼성전자, 미국 증시를 대표하는 테슬라 등 개미들의 사랑을 받았던 대장주들의 주가가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여윳돈을 정기 예·적금 등 안전 자산으로 옮기고 있다.
14일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연초 469조2000억원에서 3월 말 415조5000억원으로 약 53조7000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6만7000원을 기록하며 52주 신저가를 갈아치웠다. 13일 소폭 반등했으나 이날 다시 6만7500원으로 하락했다. 나스닥의 테슬라 주가는 최근 10일 사이에 10% 이상 떨어졌다. 암호화폐 시장의 대장주 격인 비트코인 가격도 2주 사이에 17%가량 하락하며 한때 4만 달러 선까지 붕괴됐다.
대장주들의 고전에는 글로벌 증시 전반에 형성된 하방 압력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매달 최고 기록을 새로 쓰는 가운데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공격적 긴축에 돌입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중국의 경기 둔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더해졌다. 이는 미 증시뿐 아니라 국내 증시의 주가 하락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각에선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낙관론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기도 했으나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변동성 요인들이 많다.
믿고 있던 대장주들이 추락을 거듭하자 개미들은 안전 자산으로 여윳돈을 돌리고 있다.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2월 통화 및 유동성 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시중 통화량은 광의통화(M2) 기준 3662조6229억원으로 전월 대비 21조8445억원(0.6%) 증가해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언제든지 현금화가 가능해 주식·부동산 등 높은 수익률을 따라 움직이기 쉬운 협의통화(M1)가 0.1%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2년 미만 정기 예·적금이 19조9000억원 증가하면서 M2 상승을 이끌었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예·적금 금리 상승 영향으로 시중 자금이 주식, 암호화폐 등 위험자산을 떠나 은행 상품 등 안전 자산으로 이동한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대출이 감소했고 가계를 중심으로 정기 예·적금이 급증하고 있다”며 “개인들의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해지면서 대체 자산 매도가 이어져 안전 자산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