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수록 손해”… 원자재값 급등에 기업들 ‘적자 수렁’

입력 2022-04-17 07:59 수정 2022-04-17 10:02

식품기업 A사는 지난 몇 년간 묶었던 제품 가격을 올릴지 고민에 빠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밀가루와 설탕 가격이 계속 오르는 데다, 물류비까지 상승해 손실을 줄이려면 제품 값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급격한 물가 인상,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소비자들 시선이 곱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중견 건설기업 B사의 C대표는 적자 우려에 근심이 크다. 전체 공사비에서 30%를 차지하는 철근, 시멘트 등의 주요 자재값이 20%가량 뛰어서다. 공사는 대부분 2, 3년 전에 수주했는데 현재 들어가는 비용은 치솟으니 마땅한 대책도 없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재 가격이 또 뛴다고 하니 숨이 턱턱 막힐 뿐이다.


물건을 팔면 팔수록, 영업 활동을 하면 할수록 ‘적자 수렁’에 빠지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1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조기업 304곳을 대상으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기업영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66.8%가 “올해 영업이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 제품을 팔면 팔수록 손해가 발생해 영업적자가 불가피하다는 답변도 31.2%에 달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올해 들어 원유·천연가스·석탄 등의 에너지를 비롯해 철강, 광물, 곡물 등 거의 모든 산업 부문에서 원자재 조달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며 “최근의 원자재 가격 인상은 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기업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다 급등한 원자재 값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면 매출에 부정적 영향을 주기 때문에 기업들 고민도 깊어진다. 부담을 제품 가격에 반영했는지 묻는 질문에 충분히 반영했다고 응답한 기업은 15.8%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일부만 반영’(50.5%)하거나 ‘조만간 반영’(23.5%)할 계획이라고 했다. 반영할 계획이 없다는 기업도 10.2%나 됐다.

전인식 대한상의 산업정책실장은 “기업들은 당장의 원자재 가격 인상 부담을 어떻게 줄이느냐를 놓고 고민이 크다”며 “점차 현실화되고 있는 복합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