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장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가 5월 본선에서 러시아 참가자들을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는 지난 8일(현지시간) 홈페이지와 SNS 등을 통해 5월 18~29일 열리는 제12회 대회 본선에서 러시아 참가자 2명을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콩쿠르 측은 지난 3월 7일 예선에서 240명의 지원자 가운데 49명을 선발했고, 여기에는 2명의 러시아인도 포함됐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국적에 따른 참가자의 콩쿠르 제외는 안 된다는 세계국제음악콩쿠르연맹(WFIMC)의 지침을 따랐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는 세계 연맹의 회원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격화되자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 측은 지난 8일 러시아 참가자 문제를 재검토한 끝에 지금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배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인 학살 행위가 불거진 상황에서 러시아인을 배제하는 것 외에 도덕적, 윤리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콩쿠르 측은 모든 참가자에게 중립적이고 평화로운 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것도 있다고 밝혔다. 본선 진출자에는 우크라이나인 2명이 포함돼 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는 바이올린에 뛰어났던 핀란드 출신 세계적 작곡가 시벨리우스(1865~1957)를 기리기 위해 1965년 창설돼 5년마다 개최된다. 원래 2020년 열려야 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이나 연기돼 올해 열리게 됐다. 그동안 올레그 카간, 파벨 코간, 빅토리아 뮬로바, 레오니다드 카바코스, 세르게이 하차투리안 등 쟁쟁한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배출해 왔다. 콩쿠르를 11번 치르는 동안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우승이 5번이나 된다.
시벨리우스 콩쿠르 본선에서 배제된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라빌 이슬랴모프와 갈리야 자로바는 콩쿠르 측에서 받은 이메일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콩쿠르가 참가자들의 국적을 차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시벨리우스 콩쿠르 측의 결정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아일랜드의 더블린 국제 피아노 콩쿠르와 캐나다의 호넨스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지난달 러시아 참가자들을 제외하겠다고 발표했었다. 다만 호넨스 콩쿠르는 결정을 번복하고 러시아인 참가를 허용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가 비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인 배제를 결정한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에 대한 분노 및 전쟁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기 때문으로 보인다. 핀란드는 100년 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던 데다 1917년 소련 침공으로 영토를 빼앗긴 과거를 가지고 있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입장을 번복했다. 이와 함께 혹시 모를 러시아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주요 연료와 곡물 및 의약품을 비축하는 한편 전쟁 발생시 대피소 이용 계획까지 국민에게 공지한 상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