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출산 병원비가 필요하다고 택시기사를 속여 금전을 가로챈 30대 미혼 남성이 구속됐다. 그는 전국을 돌며 다수의 택시기사에게 병원비 명목으로 돈을 빌리고 달아난 것으로 파악됐다.
전남 해남경찰서는 아내가 출산해 급전이 필요한 것처럼 속여 택시기사에게 돈을 빌린 뒤 갚지 않고 도주한 혐의(사기)로 A씨(33)를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해남종합버스터미널에서 목포 모 병원까지 택시로 이동한 뒤 기사 B씨로부터 산부인과 정산비 명목으로 88만원을 빌려 갚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시외 운행 요금 6만원을 내지 않은 혐의도 받는다.
조사 결과 A씨는 목적지 도착 직후 B씨에게 ‘출산한 아내의 병원비를 정산해야 하는데 지갑을 두고 왔다’고 속여 돈을 빌렸다. 또 B씨에게 자신의 연락처까지 알려주며 ‘곧 아버지가 도착하니 빌린 돈을 바로 갚겠다’고 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사기 행각에 속아 병원 앞 ATM 기기에서 인출한 현금과 수중에 있던 돈까지 건넨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1시간 넘게 기다린 B씨는 A씨가 연락을 받지 않자 뒤늦게 속았다는 걸 깨닫고 경찰에 신고했다.
해당 사건은 지난달 31일 B씨의 자녀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버지가 택시기사예요. 사기당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알려졌다.
글쓴이는 “(당시 아버지는 해당 손님을) 1시간 넘게 기다렸다”며 “출산을 미끼로, 시골 어르신을 상대로 악질적인 사기를 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A씨가 남긴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외국인 여자분이 받고 수신 거부한다”며 “주변에 택시 (운행)하시는 분 있으면 조심할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A씨가 언급한 아내와 아버지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미혼이며 자녀가 없는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인터넷 도박으로 생활비를 탕진해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통신·탐문 수사를 벌여 신고 엿새 만에 A씨를 서울에서 검거했다.
검거 직후 A씨는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범행을 했다’고 털어놨고, 경찰의 여죄 수사를 통해 전국 각 경찰서에서 비슷한 사건 37건이 접수된 사실이 확인됐다.
경찰은 우선 A씨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혐의가 입증된 나머지 사기 범행 37건도 각 관할 경찰서에서 광주지검 해남지청으로 송치된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