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치매면 아내도 치매 걸리기 쉽다

입력 2022-04-11 10:47 수정 2022-04-11 21:15
국민일보DB

배우자가 치매인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치매에 걸릴 위험이 74%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다시말해 남편이 치매에 걸리면 아내 또한 치매를 앓기 쉽다는 얘기다.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이는 생활습관을 부부가 공유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특히 배우자가 치매인 경우 신체활동 부족과 우울증 심화가 파트너의 치매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치매 환자 뿐 아니라 배우자에게도 인지 장애와 우울증에 대한 교육과 정기검진, 부부의 신체활동을 증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 제공 등 다양한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 교수팀은 이 같은 연구결과를 미국의사협회(AMA)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JAMA Network Open) 최신호에 발표했다.

치매 환자는 지능·의지·기억 등 정신적 능력이 현저하게 감퇴하기 때문에 정상 생활이 힘든 경우가 많다. 따라서 치매 환자는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배우자가 있는 치매 환자는 배우자가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함께하며 환자를 보조한다.

기존 여러 연구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배우자는 일반인 배우자에 비해 기억력, 언어인지 등 정신적 능력이 빠르게 감퇴한다. 부부는 평생 같은 환경을 공유하기 때문에 치매를 발병시키는 생활습관을 함께하다 보면 치매 환자의 배우자 역시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치매 발병 원인의 약 40%는 난청, 교육 수준, 흡연, 우울증, 사회적 고립, 외상성 뇌손상, 신체 활동, 고혈압, 거주 환경(대기오염), 비만, 과음, 당뇨 등 사람이 조절할 수 있는 12가지 인자들로 구성되고 대부분 부부가 공유하기 쉬운 요인들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부부가 공유하는 생활습관 중 어떤 인자가 치매 발병 위험성을 높이는 지 밝혀낸 연구는 아직 없었다.

이에 연구팀은 ‘한국인의 인지 노화와 치매에 대한 전향적 연구(Korean Longitudinal Study Cognitive Aging and Dementia, KLOSCAD)’에 참여한 60세 이상 한국인 부부 784쌍을 대상으로 대기오염을 제외하고 조절 가능한 11가지 치매 위험 인자들을 2년마다 추적 조사했다.

연구 결과 배우자가 치매인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치매 발병 확률이 1.74배 높았다. 또 11가지 치매 위험 인자 중 외상성 뇌손상과 신체활동, 우울증이 배우자 치매 발병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외상성 뇌손상의 경우 발병 위험을 19%, 신체활동 저하에 따른 우울증은 2.23% 높이는 걸로 나타났다. 교육 수준, 나이, 흡연 등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다만 발병률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외상성 뇌손상의 경우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 강조하지 않았다는 게 연구팀 설명이다.

연구팀은 따라서 치매 환자와 함께 배우자에게도 인지장애와 우울증에 대한 교육과 정기검진, 부부의 신체활동을 증진시킬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치매 환자의 경과를 개선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배우자의 치매 발병 위험을 낮추는 데도 도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교수는 11일 “치매 환자의 배우자는 치매에 대한 경각심이 높고 치매 환자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정신건강을 잘 유지하겠다는 동기가 매우 높다”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진료 현장이나 치매안심센터 등 여러 의료현장에서 치매 환자와 함께 배우자에게도 치매 발병 인자들에 대한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노년기 신체활동 저하와 우울증은 치매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위험요소다. 치매는 완치 가능한 치료제가 아직 없기 때문에 예방을 위해서 꾸준한 신체 활동과 치료 프로그램이 권장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