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생기면 주가가 떨어질까. 최근 국내외 주요 기업들에 노동조합 설립 바람이 불면서 일각에선 ‘노조 리스크’에 따른 주가 하락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노조 설립 여부와 주가 사이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국민일보가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0개 종목 중 최근 10년 내 노조가 설립됐거나 기존 노조가 있더라도 신설 노조가 출범한 사실이 확인된 주요 기업 11곳의 주가 추이를 분석한 결과, 노조 설립 여부와 주가는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 노조의 출범 직전 연도 종가와 2년 후 종가를 비교했을 때 6곳은 주가가 상승했고 5곳은 하락했다.
주가가 오른 6개 기업 중 5곳은 주가 상승률이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증가율을 넘어섰다. 2019년 전국삼성전자노조가 출범한 삼성전자의 2018년 종가는 3만8700원이었지만 노조 설립 이후인 2020년에는 8만1000원으로 무려 109.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2041.04에서 2873.47로 40.8% 상승했지만 이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2018년 노조가 설립된 네이버, 카카오는 노조 설립연도 전후로 코스피가 10.9% 하락했음에도 주가가 각각 7.2%, 12% 올랐다.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중공업 역시 코스피 상승에 비해 높은 주가 상승률을 보였다. 유한양행은 2019년 종가(4만7300원)에 비해 지난해 종가(6만2100원)가 31.3% 높았지만 같은 기간 코스피 증가율(35.5%)에는 미치지 못했다.
반면 카카오뱅크 대한항공 삼성화재 이마트 한미약품 등은 노조 설립 후 주가가 더 낮았다. 대한항공은 노조 설립연도 이전인 2018년 종가가 3만3850원이었지만 2020년 종가는 2만8500원으로 15.8% 하락했다. 이마트는 코스피 상승 시기에도 주가가 4.5% 하락했다.
그간 많은 투자자 사이에서 노조 설립은 주가 하락 요인으로 여겨져 왔다. 노조의 임금 인상 압력에 기업의 유동성이 줄어드는 등 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선 주주들이 노조의 임금협상 요구안을 강하게 질타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일부 언론도 국내외 주요 기업의 노조 설립 소식을 전하며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해왔다. 한 국내 매체는 최근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온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에서 첫 노동조합이 설립됐다는 소식을 다루며 “노조 설립에 ‘매도 보고서’ 나와”라는 제목을 붙였다. 미국 경제 포털 야후파이낸스는 스타벅스의 전국적인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 등 요인이 겹쳐 주가가 20% 이상 하락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노조가 설립됐다고 해서 바로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개별 기업의 노조 설립 여부가 기업의 주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경직되고 불안정한 국내 노동시장 상황이 이미 반영돼 국내 기업들의 가치가 저평가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주가라는 것은 계속 움직이는 것으로 중장기적 영향을 봐야 한다”며 “노사관계를 불안 요인으로 보는 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시기의 단편적인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점점 사회적 책임, 조화가 중요시되면서 건강한 노사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기업의 책무로 요구되고 있다”며 “기업 내 잠복된 불만들이 표면화되고 제도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절차가 체계적으로 갖춰지면 장기적으로 효율성이 올라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