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출신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34)는 팬들 사이에서 ‘세이렌’으로 불린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름다운 외모와 신비로운 노래로 뱃사람들을 홀려 난파하게 만든다는 요정 세이렌처럼 부니아티쉬빌리 역시 외모와 실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다.
3살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피아노를 시작한 부니아티쉬빌리는 6살에 조지아 트빌리시 챔버 오케스트라와 첫 협연 무대를 가질 정도로 재능을 뽐냈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를 나와 2008년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 3위를 차지한 그는 2010년 소니 클래시컬 전속 아티스트가 됐다. 이듬해 데뷔 앨범을 선보인 뒤 지금까지 5장의 솔로 앨범과 3장의 협연 앨범을 냈다. 2012년과 2016년엔 독일의 권위 있는 클래식 음반상인 ‘에코상’을 받기도 했다. 외모에 대한 선입견은 무시 못 하지만 그의 연주는 마치 ‘세이렌’처럼 유려한 기교 속에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서정성을 느끼게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니아티쉬빌리가 오는 20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내한 리사이틀을 연다. 지난 2019년 5월 KBS교향악단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협연을 가진 적 있지만, 독주회로는 2017년 이후 5년 만이다. 내한 리사이틀을 앞두고 프랑스에 거주하는 부니아티쉬빌리와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변화를 묻는 질문에 그는 “가족 등 사랑하는 사람들을 갑자기 잃을 수 있다는 것에 큰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면서 “팬데믹 이전에는 정신없이 투어를 하며 연주에만 몰두했다면 팬데믹 이후에는 연주를 잠시 멈추고, 생각하고, 숨을 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고 답변했다.
이번 내한 콘서트에서 그는 지난 2020년 발표한 솔로 앨범 ‘미궁’(Labyrinth)에 실린 사티의 짐노페디 1번을 비롯해 쇼팽, 바흐, 슈베르트, 리스트의 소품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미궁’은 한 작곡가의 곡들로 구성한 이전 앨범들과 달리 여러 작곡가의 곡들로 구성됐는데, 규범적 해석에서 벗어나 고독과 우수에 찬 연주를 보여준다.
“곡 하나하나보다 전체 프로그램을 하나의 이야기로 보고 그에 따른 제 해석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미궁 속을 걸어가는 하나의 여정으로 생각하면 좋을 거 같아요. 미궁에 빠졌을 때의 당황스러움부터 길을 찾아가며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관객과 같이 풀어나가고 싶습니다.”
그는 지난 2020년 10월 명품 주얼리 브랜드 까르티에의 홍보대사가 됐다. 까르티에는 지난해 11월 그를 비롯해 배우 모니카 벨루치와 엘라 발린스카, 모델 마리아칼라 보스코노 등을 내세워 1분45초 분량의 홍보영상을 발표했다. 그는 “까르티에 콘서트에서 연주하며 인연을 맺게 됐다. 단순히 제품을 착용하고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함께 하고 싶다는 제안이 받아들여져 참여하게 됐다”며서 “고정관념을 깨고 장벽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배우나 유명 셀럽이 아닌 저 같은 음악가도 이러한 홍보대사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음악가이자 셀럽으로서 화려한 삶을 영위하는 듯 보이지만 그는 클래식계에서 누구보다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내고 있다. 지난 2020년 UN난민기구(UNHCR) 창립 70주년 기념 시리아 난민을 위한 콘서트에 참석하는가 하면 2017년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돈바스 전쟁(친러 성향 반군이 러시아와의 합병을 목적으로 일으킨 내전) 피해자를 위한 자선 콘서트, 2016년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열린 UN기후변화협약 컨퍼런스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얼마 안된 지난 3월 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우크라이나를 위한 연대’ 콘서트에도 참여했다. 이 콘서트에서 그는 쇼팽의 연습곡 12번 ‘혁명’을 연주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을 돕기 위한 자선 콘서트가 빠르게 기획됐는데요. 내 위치에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물론 어떤 것도 상황을 되돌리거나 우크라이나 국민의 아픔을 메울 수 없겠지만요. 하지만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빠르게 전달하고 싶었고, 콘서트를 통해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 전달하기 위한 지원금도 마련됐습니다.”
전쟁 반대에 대한 그의 결연한 입장은 조국 조지아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것과 연관이 깊다. 지난 2008년 러시아는 조지아 내 남오세티야의 친러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조지아를 침공해 항복을 받아낸 바 있다. 이 쓰라린 사건 이후 그는 러시아에서 연주하는 것을 거부하는 한편 난민, 인권, 환경 등 각종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비록 논란을 우려한 듯 이메일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았지만 그는 “내 꿈은 전쟁을 멈추고 없애는 것이다. 내 연주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