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게임체인저’ SMR, 징검다리인가 역주행인가 [스토리텔링경제]

입력 2022-04-11 06:32 수정 2022-04-11 06:32

세상에 완벽한 에너지란 없다. 가장 널리 쓰였던 화석연료는 탄소배출의 원흉으로 꼽힌다. 대안으로 지목된 태양광,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는 안정성 부족이라는 고질병을 안고 있다. 비교적 이상적인 에너지로 지목됐던 원자력 에너지는 몇 번의 사고로 파멸적 결과를 낳았다.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위험성도 줄이겠다는 소형모듈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가 에너지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떠오르는 배경이다.

SMR에 거는 기대가 부풀려졌고, 위험성을 과소평가한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화석연료와 신재생에너지를 잇는 징검다리라는 낙관과 불확실한 역주행이라는 비관이 교차하고 있다. 한국에선 낙관론에 주목한 기업이 많다. SMR 기술 안정화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에너지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기 전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시도는 끝없이 이어진다.

소형모듈원자로, 엇갈리는 전망

SMR은 발전용량에서 기본 원전(1000㎿ 안팎)보다 훨씬 적은 300㎿ 이하인 걸 말한다. 모듈형으로 설치해 건설 기간이 대형 원전(APR1400 기준 56개월)보다 훨씬 짧다(24개월 추산). 제작 후 부지로 옮겨 수요에 따라 용량을 조정할 수 있다. 규모가 훨씬 작은(국제원자력기구 IAEA 기준 10㎿ 이하) 초소형모듈원전(Micro Modular Reactor, MMR)은 설치가 극단적으로 어려운 오지에 세울 수 있다.

뉴스케일이 제작한 소형원모듈원자로(SMR) 모형 윗부분. 뉴스케일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산업계는 안전성에 큰 기대를 품고 있다. SMR은 기존 원전보다 사고 확률을 줄이고 ‘유사시’에 대응하기 좋다. 전 세계에서 70종 이상의 SMR을 개발 중이다. 이 가운데 기술·사업성에서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 게 미국 ‘뉴스케일 파워(뉴스케일)’의 SMR이다. 뉴스케일은 2013년부터 미국 에너지부(DOE) 지원을 받아 SMR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아이다호주에 77급 SMR 12기를 건설하고 있다. 전 세계 SMR 중 최초의 시제품이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 비영리 민간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2029년 가동에 들어가는 아이다호주 SMR에 대해 “너무 비싸고, 너무 위험하고, 너무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뉴스케일이 제시한 발전 비용, 생산 시점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꼬집는다.

"이건 된다" 국내 기업 투자 몰려

한국 기업들은 활발하게 SMR에 투자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SMR의) 기술적인 면에 대해 검증됐다고 보면 되고, 실증과 설치가 진행되는 단계”라며 “기존 대형 원전보다 훨씬 안전하고 경제적인 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뉴스케일 프로젝트에도 한국 기업의 참여가 잇따른다. 두산중공업은 2019년부터 뉴스케일에 1억4000만 달러(약 1300억원)를 투자했다. 주단소재와 주기기(원자로, 증기발생기, 터빈발전기)도 제작·공급할 예정이다. 두산중공업은 원전 업계에서 선호하는 ‘경력자’다. 미국 원자력발전소 제작회사인 웨스팅하우스에 주기기를 공급하는 등 관련 경험이 풍부하다.

뉴스케일 소형모듈원전(SMR) 플랜트 가상 조감도. 두산중공업 제공

SMR 관련 사업자는 뉴스케일뿐이 아니다. 현대건설은 미국 홀텍과 지난해 SMR 개발 및 사업 동반진출 협력계약을 맺었다. 홀텍과 현대건설은 지난달에 원전 해체사업에서도 협업한다. 현대건설은 인디안포인트 원전 해체 사업의 프로젝트 관리업무에 참여한다. 홀텍이 소유한 오이스터크릭 원전, 필그림 원전 등의 해체 사업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SMR은 원자로·냉각재 종류에 따라 경수로형(PWR), 소듐냉각형(SFR), 고온가스형(HTGR), 용융염냉각형(MSR) 등으로 분화한다. 삼성중공업은 용융염원자로 개발사인 덴마크 시보그(Seaborg)와 소형 용융염원자로를 활용한 ‘부유식 원자력 발전 설비’ 제품 개발을 위한 기술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탈원전·탄소중립 VS "안전한가? 경제적인가?"

새 정부가 ‘탈원전’ 기조를 벗어던질 것으로 보이면서 SMR 경쟁의 무대가 한국으로 옮겨온다는 희망 섞인 전망도 제기된다. 당장은 수출용 SMR의 기반을 마련하는 게 핵심 과제다. 창원시는 SMR 관련 미래에너지특화산단을 조성키로 했다. 창원이 기반인 두산중공업은 물론 탈원전 정책 이후 어려움을 겪으면서 발전이 도태된 중소 협력업체의 생태계를 되살리는 데 방향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창원시 관계자는 “그동안 폐업한 기업도 많고 멈춰뒀던 장비를 시험 평가해야 하는 기업도 있어서 펀드 운용 등 상생 방안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뉴스케일 소형모듈원전 단면. 두산중공업 제공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부터 경북도, 울진군, 한국원자력연구원, 포항공대, 포스코, 포항산업과학연구원과 MMR을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기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규모가 작은 MMR은 오지에 건설할 수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이미 미국 전문기업 USNC와 지분투자 계약을 맺고, MMR 기술을 강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SMR은 ‘완벽한 에너지’로 거듭날 수 있을까. 뉴스케일은 자사 SMR의 출력 용량을 35㎿로 설계했다가 40㎿, 45㎿, 50㎿, 60㎿, 77㎿으로 잇달아 높이고 있다. 환경기후단체에서는 이런 설계 변경이 소형 원자로의 경제성이 부족함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웨스팅하우스도 기존보다 출력 용량이 작은 600㎿을 연구하다 경제성 한계에 부닥쳐 파산했다고 주장한다.

대형 원전에 따라붙는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은 SMR에서도 걷히지 않았다. 되레 경제성을 의심하는 꼬리표가 추가로 붙고 있다. 세상에 완벽한 에너지는 아직 없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