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창작시집은 ‘해파리의 노래’이다. 한국 최초의 번역시집인 ‘오뇌의 무도’를 발간하기도 했던 김억의 첫 시집으로 1923년 2월 조선도서주식회사에서 출판됐다. 내년 이 시집을 기점으로 하는 한국 현대시 100년을 맞아 열린책들이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을 선보였다. ‘해파리의 노래’를 비롯해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년)까지 한국 현대시 탄생의 순간들을 보여주는 20권의 시집 초간본을 복간했다.
열린책들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20세기 초는 시대적 고통과 개인의 천재성이 만나 탁원한 시집이 다수 출간된 시기였다”고 밝혔다. 교과서에 실리고 지금도 꾸준히 읽히는 김소월, 한용운, 백석, 정지용, 윤동주 , 임화, 이용악 등이 이 시기 활동한 대표 시인들이다.
하지만 일반 독자들이 20세기 초의 시집을 접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시집 자체가 망실되거나 절판됨에 따라 구하기가 어려웠고, 시집을 구했다고 해도 읽기가 어려웠다. 그동안 한글 표기법이 변했고 출간 당시의 오식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100주년 기념판’은 초간본 그대로 배열하고 편집하되 표기와 맞춤법을 오늘날에 맞게 수정했다. 또 현재 쓰지 않는 말이나 이해가 어려운 말들은 뒤에 각주를 붙였다. 예를 들면, ‘해파리의 노래’에 수록된 시 ‘눈물’에는 “히용 없는”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의 각주를 보면 “‘히용 없는’은 ‘하염없는’의 오기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고 설명돼 있다. 이밖에도 각 시집마다 해설을 첨부해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100주년 기념판’은 한국 현대시 탄생의 순간들을 보여주는 시집 들 중에서도 문학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시집을 선정했다. 섬세하고 간결한 언어로 어두운 현실을 강력하게 드러낸 박남수의 ‘초롱불’, 젊음의 비애와 허무에 대한 감각이 예리하게 드러나는 오장환의 ‘헌사’, 모더니스트 김기림의 ‘태양의 풍속’, 심미와 서정의 한 극단을 보여주는 김영랑의 ‘영랑 시집’ 등이 포함됐다. 그동안 접하기 어려웠던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동맹) 시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인 ‘카프 시인집’, 카프 문학을 대표하는 시집인 임화의 ‘현해탄’ 등도 복간됐다.
책임편집을 맡은 이남호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 현대시를 대표할 만한 시집들의 초간본은 다시 출간하는 일은 점점 과거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여 여전히 오늘의 것이 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