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오전 9시 서울 구로구 반려동물보호센터에는 이른 시간부터 다섯 개의 수술용 간이침대가 꾸려졌습니다. 환자는 전날 강서구 캣돌봄이들이 포획한 32마리의 길고양이들. 길고양이의 개체수 조절 및 민원 해소를 위해 서울시가 올해 20차례 진행하는 ‘서울시 TNR데이’의 첫 대상묘들입니다. TNR이란 포획(Trap), 중성화수술(Neuter), 제자리방사(Return)의 약어로 길고양이 증식을 막기 위한 중성화수술을 뜻합니다.
TNR에 성공하려면 가장 먼저 캣돌봄이들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길고양이들은 야성이 강해 사람 손길을 피하는데 오래 사료를 챙겨준 캣돌봄이만큼은 멀리서 발소리만 듣고도 반깁니다. 이런 특성 탓에 길고양이를 포획틀에 담을 수 있는 것은 평소 신뢰를 쌓은 캣돌봄이뿐이죠.
15명의 강서구 캣돌봄이들도 평소 돌보던 고양이의 중성화 시술을 위해 이틀 전부터 꼬박 포획틀 곁을 지켰습니다. 길고양이가 담긴 포획틀을 집결장소로 실어나른 한 이동봉사자는 “그날 하필이면 오후부터 차가운 봄비가 내렸다. 고양이들이 비에 젖을까봐 캣맘들이 근처에 대기했는데 다행히 새벽 3시까지 30개 포획틀 대부분 포획에 성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민들 반응도 우호적이었습니다. 강서구의 캣맘 김현정(54)씨는 “사료를 줄 때면 따라와서 손가락질하는 주민들이 계셨는데 포획해서 중성화한다고 하니까 ‘잘한다’ ‘중성화에 찬성한다’며 칭찬하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일단 길고양이들이 포획되면 이제 수의사들이 도움을 줄 차례입니다. 이날 중성화 수술 현장에는 15명의 수의사를 비롯해 서울대, 건국대 수의학과, 서정대 반려동물학과 학생 등 도합 30여명의 의료봉사자가 모였습니다. 수의사를 중심으로 3인1조를 구성한 뒤 마취, 중성화수술, 기초 예방접종을 나눠 맡았습니다. 전체 시술은 10~30분가량 소요되며 마지막에는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는 표식으로 한쪽 귀 끝의 1㎝가량을 자르는 이어티핑(ear-tipping)을 하지요. 수술을 마친 고양이들은 이후 회복실에서 72시간 동안 영양식을 급여 받은 뒤 본래 서식지에 방사됩니다.
수의사인 조윤주 서정대 반려동물학과 교수는 “미국, 유럽 등지에서는 길고양이 개체수 급증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차원에서 수의사와 지역주민이 함께 지역 TNR을 시도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서울시의 시범사업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다양한 TNR 협업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조 교수는 2014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지역 TNR 내용을 포함한 보호동물 의학(shelter medicine)교육과정을 수료한 뒤 2017년부터 서울시의 지역 TNR 사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길고양이 증식을 막는 최선책은
길고양이의 과도한 번식은 세계적인 골칫거리입니다. 비좁은 도심지역, 거주지 등에서 개체 수가 늘어나면 영역다툼 과정에서 야간소음이 발생하고 고양이를 돌보는 주민과 반대 측의 갈등이 심해집니다. 한때 살처분을 통해 개체 수를 조절하려는 시도도 있었죠. 영국 런던, 서울 종로 일대에서 시도됐던 이 방법은 빈 구역에 다른 고양이가 유입해 번식하는 이른바 진공효과가 발생하면서 실패했습니다.
반면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지역 고양이의 70%가량을 중성화함으로써 개체수 유지에 성공하는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중성화를 통해 개체수가 유지되자 고양이끼리 먹이를 두고 다투는 야간소음이 줄고, 영역을 확보한 기존 고양이가 외부 개체의 유입을 막는 문지기(gate keeper)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이에 따라 영미권에서는 지역 고양이를 대량으로 포획해 중성화 후 방사하는 TNR 전문 의료단체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지역 TNR의 정착을 위해 운영하는 ‘서울시 TNR데이’ 시범사업은 주민 신청으로 진행되며 신청자가 직접 길고양이를 포획하면 이후 수의사 등 의료봉사자들이 서울시의 의약품과 시설을 활용해 중성화 시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문제는 협업이었어요.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많은 수의 고양이를 포획·방사해줄 지역 주민과 빠른 시간 내에 중성화 수술을 해낼 수 있는 수의사 간의 협업이 필수적입니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배진선 TNR 담당 팀장은 “서울시는 과거 길고양이의 대규모 살처분을 시도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어 지역 단위 중성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서로 간에 불신이 컸던 캣맘과 수의사, 공무원이 협업하면서 신뢰도를 키울 수 있다는 점도 TNR 사업의 큰 장점”이라고 설명합니다.
조 교수는 “지역 TNR의 효과를 증명하려면 전문가들의 자원봉사는 필수적”이라며 “의약품과 장소 마련에 서울시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큰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270명의 수의사가 참여한 단체메신저 방에서 수시로 자원봉사를 독려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시의 길고양이 공생 시도…6년만에 20만마리→9만마리 ‘뚝’
2017년 도입된 TNR 사업의 성과로 서울시 길고양이 숫자는 더 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발표한 길고양이 서식 현황에 따르면 2015년 20만마리에 달하던 길고양이 개체 수는 이후 2019년 9만~10만마리로 줄어들었으며 이후 9만 마리 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체 중성화 비율은 10.3%(2015년)에서 49%(2021년)로 높아졌습니다.
-집도의 1명당 6마리 넘는 길고양이를 수술하는 고된 일정인데, 무료 봉사하는 이유는
“대가를 받으면 ‘수의사들이 시술한 고양이 마릿수로 장사를 한다’ ‘하루 일당벌이를 한다’는 등 오해도 있어 지역 TNR 사업의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다. 무료로 봉사해야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의약품과 장소 섭외 등에 서울시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책임이 무겁다. 이런 노력으로 5년간 지역 TNR사업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제는 제법 정착한 듯하다. 하루에 80마리씩 대규모 수술도 소화할 수 있다.”
-길고양이 돌봄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크다. 대량 번식을 유도하는 캣맘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도 큰데
“해외 캣돌봄이들은 고양이 개체수를 관리하기 위해 스스로 단체를 조직하고 모금을 한다. 반면 국내 캣맘들은 개인적으로 사료를 챙겨줄 뿐 이런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서울시 TNR사업을 계기로 캣맘이 주체가 되어 포획지역을 정하고 개체수를 관리하는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웃 주민들도 캣맘이 개체수 조절을 위해 힘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캣맘의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는 효과도 크다.”
-인위적으로 길고양이 개체수를 조절하는 TNR은 비인도적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TNR사업의 핵심은 과도한 번식을 멈추는 것이다. 기하급수적인 번식의 굴레를 겪은 캣맘들도 TNR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TNR은 길고양이의 중성화뿐만 아니라 예방접종과 건강검진을 겸한다. 길고양이의 건강관리 또한 지역 중성화 사업의 중요한 한 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의 지역 중성화 교육 내용을 소개하자면
“(플로리다주립대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 오퍼레이션 캣닙(OC)은 많은 수의 고양이를 최대한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중성화수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문조직이다. 25년 경험을 바탕으로 고양이 포획부터 시술, 방사까지 모든 과정을 표준화했으며 그 노하우를 미 전역의 수의사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교육과정을 수료한 수의사들이 미국 각지에 지역 중성화 시스템을 정착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저는 2014년 플로리다에서 교육과정을 수료한 뒤 5년째 국내 제도화에 힘쓰고 있다”
-길고양이의 개체수 관리에 세금이 투입되는 점에서 불만이 제기되곤 하는데 (*올해 서울시 TNR데이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582만원으로 길고양이 400마리의 약품 구입비용에 해당함. 의료인력의 자원봉사로 진행되므로 일체 인건비는 발생하지 않음)
“길고양이를 둘러싼 시민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양이 개체수를 관리해야 한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법이 중성화 사업이라는 것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전문가들도 동의하는 내용이다. 갈등 관리 차원에서 지자체나 국가가 나서기로 한 이상 최대한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서울시의 시범사업은 성공사례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보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지역 중성화 전문센터를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