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검수완박’에 대검 공식 반대 “국민 불편 가중”

입력 2022-04-08 11:38 수정 2022-04-08 15:33
김오수 검찰총장이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해 대검찰청이 공식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일선 검사들도 잇따라 검수완박 정책 관련 비판글을 게시하는 등 반발이 커지는 모양새다.

대검은 이날 오후 대변인실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 “대검은 정치권의 검찰 수사기능 전면 폐지 법안 추진에 반대한다”며 “개정 형사법 시행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러 문제점이 확인돼 지금은 이를 해소하고 안착시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대검은 이어 “검사가 직접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70여년 시행되던 형사사법절차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이라며 “(형사사법 체계에) 극심한 혼란을 가져올 뿐 아니라 국민 불편을 가중시키고 국가의 중대범죄 대응 역량 약화를 초래하는 등 선진 법제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검은 “검찰총장은 검찰 구성원들의 문제인식과 간절한 마음을 깊이 공감하고 있고, 현 상황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을 더 힘들고 어렵게 하는 검찰수사기능 전면 폐지 법안에 대해 국민들을 위해 한 번 더 심사숙고하고 올바른 결정을 하여 주시기를 정치권에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대검은 이날 오후 김오수 검찰총장 주재로 전국 고검장회의를 열고 검수완박 등 관련 현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검찰 내부 “검수완박은 헌법 질서 파괴 행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국민일보DB

권상대 대검찰청 정책기획과장(사법연수원 32기·부장검사)은 이날 오전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검수완박 추진 관련 상황과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한다”는 글을 올렸다.

권 과장의 글은 김 총장의 사전 승인을 받고 게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는 전날 민주당 출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법제사법위원회로, 법사위 소속이던 민주당 박성준 의원을 기획재정위원회로 맞바꿔 사·보임했다. 민주당은 법사위에 비교섭단체 위원이 없고 기재위에는 3명이 몰려 있는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였고 다른 의도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검수완박’ 기조를 강행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비교섭단체 소속 위원이 있는 경우 안건조정위원 비율이 3대 3에서 3대 2대 1로 바뀐다. 양 의원의 사·보임을 통해 안건조정위가 범민주 4명과 국민의힘 2명 비율로 바뀌는 것이다.

권 과장은 이런 국회 상황을 설명하면서 “(민주당은) 사·보임을 검수완박 등 쟁점 법안 처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미 지난해 사·보임을 통해 안건조정위가 무력화된 사례가 있다”며 “설명을 진심으로 믿고 싶지만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썼다.

권 과장은 “검수완박 법안의 핵심은 검찰 수사권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라며 “복잡하고 비용이 드는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는 유보하고 우선 검찰 수사권 폐지만 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고 했다.

이어 “형사사법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법안도 다수당이 마음 먹으면 한 달 안에 통과될 수 있는 거친 현실”이라며 “이 법안의 심의절차가 과연 우리 헌법과 국회법이 용인하는 것인지, 우리 가족을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데 도움이 되는지, 상식과 양심이 존중받는 사회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인지 묻는다”고 덧붙였다.

일선 검사들도 권 과장의 글에 호응하는 댓글을 달았다. 박찬록 부산지검 2차장검사(30기)는 댓글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도 없이 오랜 시간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형사사법체계를 정치적 이해에 따라 하루아침에 갈아엎는다는 자체가 참으로 무섭고 흉하다”고 지적했다.

김종우 대검 형사2과장(33기)은 “검사의 수사는 경찰이 무고한 사람을 과잉수사하거나 마땅히 처벌해야 하는 사람을 부실수사한 경우 이를 시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누구를 위한 법 개정인지 묻고 싶다”고 썼다.

권순정 부산지검 서부지청장(29기)은 “소추권자가 사실관계 확인을 하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입법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며 “헌법상 규정된 검사의 책무 수행을 불가능하게 하는 헌법 질서 파괴행위”라고 지적했다.

중대범죄수사청 등 검수완박은 지난해 3월에도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했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정책 추진에 반발해 지난해 3월 4일 사의를 표명했다.

내부망에는 권 과장의 글이 올라온 후 일선 검사들의 입장문이 뒤따라 게시됐다.

강수산나 인천지검 부장검사(30기)는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중대 업무를 4월까지 시한을 정해놓고 진행하려는 시도는 누가 보더라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입법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복현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장검사(32기)는 김오수 총장과 고검장·검사장들의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이 부장검사는 “현 총장께서는 법무차관으로 현재 제도 설계에 직접 관여했고 고검장·검사장 다수는 총장님이 ‘검찰개혁’ 과정에서 역할을 하실 때 옆에서 함께 도운 분들”이라며 “일개 부장검사급 과장이 분을 토하며 글을 올릴 지경까지 돼도 어디서 뭘 하시는지 모르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고 했다.

이 부장검사는 “내 목을 쳐라라고 일갈한 모 총장님의 기개까지는 기대하지 못하겠지만 소극적인 의사 표현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차라리 검수완박은 시대적 소명이라고 입장을 표명하라”며 “모래 구덩이에 머리를 박는 타조처럼 사라져 버린 분들을 조직을 이끄는 선배로 모시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