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논란 끝에 지난달 30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일시중단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내세운 요구 사항은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휠체어를 타거나 앞이 보이지 않는 등 장애가 있는 교통약자가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지상 출입구에서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 등을 이용해 한 번에 갈 수 있는 ‘1역사 1동선’이 필요하다는 요구다.
4월 현재 기준 서울교통공사가 관할하는 지하철역 중 21곳은 이 같은 ‘1동선’이 확보돼 있지 않다. 이는 장애인들에게 어떤 현실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하철 시위에 나선 장애인 단체는 왜 엘리베이터를 요구하며 ‘생존권’을 얘기한 것일까.
국민일보 인턴기자 3인이 실제 장애인이 지하철로 이동 시 어떤 부분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이자 휠체어 장애인인 전윤선씨의 출근길을 동행했다.
수많은 표지판 속 ‘엘리베이터 위치’ 안내는 없었다
지난 1일 양재역 4번 출구 근처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전씨는 경기 성남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면서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고 했다. 저상버스나 장애인 택시와 같은 교통수단이 있긴 하지만, 배차 간격이 길고 출근시간에는 교통 체증도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하철 출근도 시작부터 수월치 않았다. 대합실로 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하는데, 먼저 온 승객이 탑승하는 바람에 휠체어를 탄 전씨와 취재팀은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했다.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이 엘리베이터를 탄 것이었지만 전씨는 익숙하다는 듯 “한 번 기다렸다 타는 것은 괜찮다”고 말했다. 사당역이나 군자역처럼 엘리베이터가 긴 곳에는 위로 올라갈 사람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뒤 다시 올라오는 얌체 탑승도 허다하다고 했다. 새치기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무사히 개찰구에 도착했나 싶었는데 이번엔 기자들의 실수가 발생했다. 기자는 별다른 의식 없이 평소처럼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들어갔는데, 해당 개찰구 쪽으로는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던 것이었다. 당황한 기자들은 어느 쪽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주위를 둘러봤지만 그 경로를 안내하는 표시 등은 찾을 수 없었다.
지하철 역사 곳곳에 지하철 환승 방향이나 출입구 방향 등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것과 달리 장애인의 이동에 필수적인 엘리베이터 위치 안내는 찾을 수가 없다니. 황당하게도 엘리베이터 안내 표시는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가니 하나 붙어 있었다.
전씨는 기자들의 실수에도 개의치 않고 다른 개찰구를 찾아 이동했지만, 낯선 길이거나 지하철 이용을 자주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엘리베이터 위치 안내는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전씨도 “보통 안내 표지판을 따라 출입구와 환승 구간을 찾는데, 안내 표지판에는 엘리베이터 위치 표시가 없어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승강장 1-1 근처에, 출입구 1번과 2번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고 설명하면 찾기 쉽지 않냐”고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어 “(서울교통공사가) 엘리베이터 위치 설명을 추가하겠다고 약속하는 데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휠체어 못 돌리게 좁은 엘리베이터…열차 타려면 걸리는 ‘턱’
엘리베이터가 있는 개찰구를 겨우 찾았지만,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휠체어 전용 개찰구 철문이 오른쪽으로만 열리고 너무 무거워 전씨는 안간힘을 쓴 끝에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타게 된 엘리베이터는 휠체어를 좌우로 돌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협소해 장애인을 위한 시설인지 의심케 했다.
승강장에 도착한 전씨는 승강장 바닥에 장애인 표시가 있는 구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노선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통상 장애인 석은 1-4, 4-4처럼 열차 칸 맨 끝 문에 위치해 있다.
장애인 구역이 설정돼 있지만, 열차와 승강장 사이 ‘폭’이나 높이 차이를 뜻하는 ‘단차’는 해소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장애인석 표시가 있어도 단차가 높거나 승강장 사이가 넓어 휠체어가 걸리는 등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전씨 역시 과거 높은 단차에 걸려 큰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단차가 높아서 열차에 올라타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휠체어를 조종했었지만, 역부족이었죠. 턱에 걸려 개구리처럼 열차 바닥에 엎어졌어요.” 전씨는 당시 문제 해결을 위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고 전했다.
모든 지하철이 다 이런 것은 아니라는 게 전씨의 설명이다. 대구도시철도공사는 2016~2017년 승강장 간격을 10㎝ 이하로 유지되도록 발 빠짐 방지 고무판과 자동안전발판을 설치했다. 부산교통공사도 자동안정발판을 시범 운영하며 단차와 폭 간격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서울지하철은 승강장과 열차 사이 폭에 빠지는 사고가 2017년 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340건이나 발생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사고 방지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장애인석이 모든 열차에 마련된 것도 아니다. 장애인석 표시가 있어 탔는데 노약자, 임산부 등을 위한 교통약자 배려석으로만 채워진 경우도 많다. 장애인석에 여행용 가방이나 자전거 같은 물건도 둘 수 있게 돼 있어 정작 이용하지 못할 때도 있다. 전씨는 “왜 장애인이 여기에 타는 거야 하면서 머리를 때리는 승객도 있었다”면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탑승해도 (장애인석을) 양보해주지 않아 지하철 중앙에 서게 될 때도 있다”고 전했다.
인터뷰 도중 대화행 열차가 도착했다. 전씨는 이제 중간 목적지인 고속터미널역으로 향한다. 다행히 이곳 양재역은 단차가 낮고 폭도 좁아 수월하게 지하철에 탑승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전씨와 만난 지 18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목숨 걸고 타는 ‘살인기계’,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전씨와 기자들은 3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환승해 7호선 대림역 방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3호선에서 7호선으로 환승하는 통로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전씨는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전씨는 리프트를 타기도 전부터 사고가 나진 않을까 두려움에 전전긍긍했다.
리프트 옆에 설치된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자 3분 후 역무원이 나타났다. 원래 장애인이 직접 리프트 작동 버튼을 눌러야 했으나, 2017년 이 버튼을 누르려다 휠체어 장애인 한경덕씨가 계단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 뒤 호출 방식으로 바뀌었다.
직원이 리프트 버튼을 대신 눌러주자 전씨는 직접 전동 휠체어를 끌고 입장했다. 안전바 두 개가 내려왔지만 휠체어를 지탱해주진 못했다. 중심이라도 잃으면 앞, 뒤, 옆 어디로든 쏟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리프트는 좌우로 계속 흔들렸다.
덜덜 떨리는 리프트 진동 소리와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리프트가 내려가고 있다는 알림을 주기 위한 벨소리가 겹쳐 들렸다. 전씨는 혹시라도 리프트가 떨어질까 불안해했다. 리프트 작동을 알리는 벨소리가 리프트 이용 시부터 도착할 때까지 계속됐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전씨는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는 5분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감내했다.
“리프트 바닥 쪽이 계단이랑 맞닿는 탈칵탈칵 소리가 들리면 혹시나 잘못될까 무서워요.” 전씨가 리프트에서 내리고서야 입을 열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정면을 보면서 내려오니까 아찔해 죽겠어요.”
전씨는 리프트를 ‘살인기계’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사형 휠체어 리프트로 사용으로 인한 사고는 1999년부터 지금까지 17건 있었다. 2001년 4호선 오이도역에서는 설치된 지 6개월도 안 된 수직형 휠체어 리프트가 케이블이 끊어지며 5m 아래로 추락해 70대 여성이 사망한 바 있다. 장애인은 단지 지하철을 타려다가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어야 했다.
“죽으란 소리죠. 요구를 해봤자 반영이 전혀 안 돼요. 집회가 최후의 보루예요. (정치인들이) 약속은 잘하는데 계속 미뤄지고 있어요.” 전씨가 말했다.
장애인이 말하는 진짜 ‘1역사 1동선’은
계획했던 이동 경로는 엘리베이터가 미설치된 남구로역이었으나 전씨가 리프트 사용을 꺼려 취재팀은 이수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전씨는 이수역으로 가기 위해 7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석남행 열차에 올랐다. 장애인석 표시가 된 곳이었지만 단차가 높고 지하철과 승강장 폭이 넓어 휠체어가 덜컹거리며 힘겹게 열차를 넘어갔다.
이수역에 내린 기자들과 전씨는 바닥을 보며 의아해했다. 7호선의 경우 장애인석의 위치는 1-4, 4-1, 5-4, 8-1이어야 하지만 7호선 이수역의 장애인석 표시는 4-2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장애인들의 탑승 혼선과 승객의 불편함을 초래한다.
또 장애인석이 위치한 곳은 단차가 낮고 폭이 좁아 장애인 탑승이 용이한데 이수역 같이 장애인 석이 다른 경우에는 단차와 폭이 장애인석만큼 고려되지 않는다. 전씨는 “다른 승객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단차와 폭 문제도 발생할 수 있어 위험하다”며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7호선 이수역에서 목적지인 4호선 사당역으로 가기 위해서 전씨는 7호선 바깥으로 나와야 지상으로 이동해야 했다. 비장애인은 환승 승강장까지 3분이면 걸어갈 수 있지만, 장애인은 또 리프트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수역 내부에는 4호선과 7호선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전씨는 리프트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차라리 외부로 나가서 4호선으로 환승하겠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전씨를 따라 7호선에서 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7분가량 도보로 이동한 후, 다시 4호선 엘리베이터를 찾아 내려갔다. 취재팀과 전씨는 바로 환승 가능한 통로를 지나쳐 10분을 이동했다.
전씨는 “진정한 1역사 1동선을 위해서는 모든 역 엘리베이터 설치는 기본이고, 역 사용자 수에 맞게 개수를 늘려야 한다”며 “고장이나 유사시 대응 생각해봤을 때도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2개 이상은 필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씨는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했다. “그나마 오늘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지, 비나 눈이 오면 미끄럽고 우산 쓰고 이동하기 힘들어요.”
우리는 ‘돌아가는 인생’을 산다
전씨는 장애인으로 사는 삶을 “돌아가는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전씨는 근육병으로 휠체어를 타게 된 이래로 20년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사에 한두 개 겨우 설치된 외부 엘리베이터를 찾아야만 했다고 했다. 역사 안에서도 전씨는 휠체어 출입구와 장애인석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그는 지하철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엘리베이터 표시를 또 찾아야 했다.
전씨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내 동료가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고, 저 틈 사이에 빠져 죽고 이러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요.” 전씨가 말했다. “그건 정치적 의미하고 전혀 상관없어요. 이거는 우리의 생명의 문제야 생명의 문제.”
“장애인들은 21년 동안 똑같은 요구를 하는 것뿐이에요. 백날 얘기했는데 안 들어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다고….” 전씨는 가슴을 치며 말했다.
21년간의 외침…돌아온 대답은 "2024년까지"
전씨와의 동행 과정을 통해 1역사 1동선이 아직 멀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1역사 1동선은 언제쯤 가능할까.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2024년까지 1역사 1동선 확보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당초 계획보다 2년 더 늦춰진 것이다.서울교통공사는 2022년까지 모든 역에 1역사 1동선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사유지 저촉 ▲지장물 과다 ▲공간 협소 등 엘리베이터 설치에 방해가 되는 요인들로 불발된 바 있다.
특히 사유지 저촉 문제는 아직도 엘리베이터 설치에 발목을 잡고 있다. 엘리베이터 설치 부지가 개인 소유일 경우 소유주와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신설동역, 까치산역, 대흥역 3개 역은 현재도 엘리베이터 설계 및 설치를 위한 ‘지속 검토’ 대상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모여 일상은 더 행복해집니다. 더 편리하게, 늘 안전하게, 서울교통공사가 도시를 움직입니다.”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 슬로건-
누구나 편리하게,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서울 지하철. 그 ‘우리’에 장애인은 포함되는 걸까. 우리가 아닌 그들이 되어버린 장애인들은 오늘도 빙빙 돌아가는 인생을 살아간다.
황서량 인턴기자
김민영 인턴기자
이찬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