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리드타임이 지난달 26.6주(186.2일)를 기록해 사상 최장 기간을 경신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반도체는 스마트폰, 컴퓨터, 전기차, 인공지능(AI), 항공우주에 두루 사용돼 ‘산업의 쌀’로 불리는 장치다. 반도체 수급난이 경기 둔화를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5일(현지시간) “반도체의 지난 3월 리드타임이 전월보다 2일 늘었다. 반도체 리드타임은 집계를 시작한 2017년 이후 최장으로 기록됐다”는 자국 금융회사 서스쿼해나파이낸셜그룹의 조사 결과를 인용했다. 리드타임은 특정 품목을 주문해 납품을 받은 순간까지 걸린 기간을 말한다.
이 조사를 적용하면 반도체를 내장하는 제품의 생산 기간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기차처럼 최근 수요가 급증한 제품의 경우 이미 심각한 수급난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적인 전기차 기업 상당수가 올해 생산량 전망치를 하향한 원인도 반도체 수급난에서 찾을 수 있다. 전기차는 최근 미국 나스닥에서 기술주의 성장을 주도하는 대표 섹터다. 반도체 수급난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스쿼해나파이낸셜그룹은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도시 봉쇄 확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일본 지진의 영향으로 지난달 반도체 리드타임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 설명 자료에 열거된 악재는 모두 지난달에 집중됐다.
중국은 지난 2월 중 개최한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폐막한 지난달부터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주요 대도시를 봉쇄해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지난 2월 24일 시작돼 지난달 전면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 틈에 지난달 16일 일본 도호쿠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현지 기업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의 반도체 공장 3곳이 생산을 중단했다.
반도체 리드타임의 지난달 증가로 인해 이달 들어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의 주가를 종합하는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지난달 30일부터 하락 일변도로 나타나고 있다. 이 지수는 지난 5일 155.13포인트(4.53%) 급락한 3269.82에 장을 마감했다.
서스쿼해나파이낸셜그룹의 크리스 롤랜드 애널리스트는 “전력반도체와 메모리 등 여러 종류의 반도체에서 리드타임이 증가했다”며 “여러 악재가 올해 내내 공급 차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