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삿돈으로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일명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로 기소된 구현모 KT 대표가 첫 재판에서 “6년 전 부사장일 때 일인데, 당시에는 불법이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부(재판장 허정인)는 6일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 대표 등 전·현직 KT 임원 10명의 1차 공판을 진행했다.
구 대표는 법정에서 “당시 CR(대외업무) 부문에서 정치자금을 명의를 빌려 (후원)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다른 부문에서 하는 일들은 무조건 도와주라는 사내 분위기가 있었다”며 “이를 통해 개인적으로 얻은 이익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부가 “정치자금법 취지가 법인 이름으로 하지 말라는 취지다. 이제는 알고 있냐”고 묻자 “수사받고 알게 됐다”고 대답했다. 이어 “외국인 투자자들한테 이 건을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우리 경영진들이 파렴치한 사람이 돼버렸다”고도 언급했다.
구 대표 측 변호인은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인정한다”면서도 “회사 이익을 위해 했던 일이고 불법 영득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검찰은 19·20대 여야 국회의원 99명에게 4억3790만원을 불법한 후원한 혐의로 전직 KT 대외업무 담당 부서장 맹모씨 등을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2014년 5월~2017년 10월 상품권을 매입했다가 되팔아 현금화하는 수법으로 11억5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임직원과 지인 명의로 100만~300만원씩 금액을 쪼개 국회의원 후원 계좌로 이체했다.
구 대표 등 전·현직 임원 10명은 대외업무 팀에 명의를 빌려주는 방식으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 대표 이름으로는 국회의원 13명에게 1400만원의 후원금이 건네졌다. 검찰은 구 대표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업무상 횡령 혐의로 각각 벌금형 1000만원과 500만원에 약식기소했으나 구 대표 측이 이에 불복해 정식 재판을 청구하면서 이날 공판이 열렸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