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권 들어섰으니 나가달라”…과기부 산하 기관장의 진술

입력 2022-04-05 19:50 수정 2022-04-05 21:06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전경. 연합뉴스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장 자리에서 취임 1년 만에 물러난 A씨가 2019년 ‘과기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에 출석해 “몸통은 청와대와 장관인데, 수사할 의지가 있느냐”고 진술했다고 5일 밝혔다. 그는 당시 “사표 제출을 종용했다고 고발된 과기부 간부들은 결국 꼬리이자 깃털일 뿐이다. 몸통은 다른 곳에 있지 않겠느냐”며 ‘윗선’ 수사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A씨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3년 전 불거졌던 과기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정권 교체 후에야 다시 조명되는 것을 보니 씁쓸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2019년 3월 “환경부에 이어 과기부 등이 제2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며 서울동부지검에 고발장을 냈다. 정부 출연 기관 원장으로 있던 A씨는 이로부터 9개월 가량 지난 12월에야 검찰에 참고인 자격으로 나가 퇴직 경위 등을 진술했다.

A씨의 진술과 고발장 등에 따르면 사표 종용이 시작된 시점은 2017년 11월부터였다. B 전 과기부 혁신본부장은 그해 11월 28일 자신의 사무실로 A씨를 불러 “저는 말씀만 전할 뿐이다. 아무것도 묻지 마시고 사표 제출 날짜를 달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그 다음 달 21일엔 C 과기부 차관이 “촛불정권이 들어섰으니 나가달라. 청와대의 뜻인지는 묻지 말라”며 거듭 사표 제출을 압박했다고 A씨는 전했다.

잇따른 종용에도 사표를 제출하지 않자 2018년 1월부터 과기부 감사실 주관으로 감사가 시작됐다. A씨는 “감사를 받으며 직원들이 고초를 겪는 것을 보고 ‘그만 물러나겠다’고 전하니 (과기부에서) ‘사표 낼 날짜를 달라’고 했다”며 “억울해서라도 임기 1년은 채우고 몇 달 뒤 자진사퇴 형식으로 나오게 됐다”고 했다. 당시 과기부 장관은 유영민 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현 정부 초기 사표를 낸 다른 과기부 산하 기관장이 돌연 사망한 사건은 최근 법원 소송을 거쳐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도 했다. 2018년 2월까지 한 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한 D씨는 사표 제출 후 3개월 뒤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는 사직 직전까지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감사을 받았으며, 사표를 낸 후 타 연구기관에서 일반 연구원으로 일했지만 그 자리에서도 물러날 것을 종용받았다고 한다. D씨는 숨지기 전 동료에게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내가 그만두면 감사가 끝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울행정법원은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는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산재 청구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최형원)는 지난달 말 압수수색을 단행한 산업통상자원부 및 산하기관에 대한 수사에 우선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이번 주 산업부 관계자 등에 대한 소환조사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수사 속도를 높이기 위해 수사팀 확대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