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리병원 빗장 풀리나…법원 “내국인 진료 제한 위법”

입력 2022-04-05 14:20 수정 2022-04-05 15:22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허가를 받은 제주 ‘녹지국제병원’ 전경. 국민일보DB

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에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두고 개원을 허가했던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병원 측이 진료 제한에 반발해 소송을 낸지 3년 2개월 만에 나온 1심 결론이다.

제주지법 행정1부(재판장 김정숙)는 5일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 같은 1심 판결이 향후 그대로 확정될 경우 영리병원에서 내국인 진료를 볼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돼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녹지제주는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풀리면 영리병원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녹지제주는 병원을 개원하지 못해 생긴 손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및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도 언급하고 있어서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이번 판결이 다른 8개 지역 경제자유구역의 영리병원 설립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영리병원은 앞서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전국의 경제자유구역 8곳과 제주에 한해 설립이 허용됐다.

영리병원은 기업이나 투자자로부터 자본을 유치해 수익이 발생하면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현재 의료법은 의료기관 설립과 운영을 의사, 국가, 지방자치단체, 비영리법인 등으로 제한한다.

영리병원을 찬성하는 쪽은 의료 분야 혁신과 함께 해외환자 유치 등 신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낸다. 반면 반대하는 쪽은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병원의 확대가 사실상 ‘의료 민영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번 1심 재판은 앞서 별도의 소송에서 대법원이 “제주도의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취소는 위법하다”고 판결한 이후 재개됐다.

다만 제주도는 지난달 28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실사 결과 내부에 의료 장비가 전혀 없고 의료 인력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제주도가 병원 개설 허가를 다시 취소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서 양측의 법적 분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녹지제주는 제주헬스케어타운 부지에 800억원을 투자해 녹지병원을 짓고 지난 2017년 8월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신청을 했다.

국내 첫 영리병원 개원을 놓고 논란이 커지자 제주도는 지난 2018년 12월 5일 내국인을 제외하고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병원을 운영하도록 하는 조건부 허가를 했다.

녹지제주는 이에 반발해 병원 개원 대신 2019년 2월 내국인 진료 제한을 취소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제주도는 분쟁이 벌어진 사이 의료법이 정한 개원 허가 유효기간(3개월)이 지나자 2019년 4월 청문 절차를 거쳐 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녹지제주는 같은 해 5월 제주도를 상대로 ‘개설 허가를 취소한 처분을 철회하라’는 소송을 냈고 지난 1월 13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녹지제주는 앞서 “내국인 진료 제한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조건을 내세워 병원 개설 허가를 해주고 투자한 기업에 모든 책임을 미루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했었다.

당시 녹지제주 측이 낸 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병원이) 내국인 이용을 배제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원 준비를 마쳤는데 제주도가 허가 신청 15개월 후에야 진료 대상을 외국인 관광객으로 한정했다”며 “개원 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