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의 상징과도 같던 ‘거포’ 박병호는 KT 유니폼을 입고 나선 3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3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해 선제 솔로홈런 포함 3안타 3타점 1볼넷 맹타를 휘둘렀다. 타율 5할7푼1리로 기대했던 파워에 더해 정교함까지 선보이며 ‘에이징 커브’에 대한 우려도 걷어냈다.
당초 KT는 1루와 지명타자 자리에 지난해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간판스타 강백호와 새로 영입한 박병호를 적절히 기용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강백호가 오른쪽 새끼발가락 중족골 골절상을 입고 3~4개월 가량 전열에서 이탈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강철 KT 감독은 “갑작스럽게 강백호가 빠졌는데 박병호를 잘 데려왔다. 덕분에 라인업을 짜는데 수월했고 잘해줄 것으로 믿는다”며 신뢰를 표했다. 박병호가 전성기 모습으로 1루를 책임져 주는 것이 갈 길 바쁜 디펜딩챔피언 KT로선 최상의 시나리오다.
LG 박해민도 팀의 리드오프로 나서 자신이 왜 FA로 영입 됐는지를 입증했다. 두 경기 2할8푼6리, 출루율 4할4푼4리로 공격에서도 힘을 보탰지만 수비에서의 존재감은 그 이상이었다. 9회 말 위기에서 짧은 안타성 타구를 전력 질주해 슬라이딩으로 건져내는 등 국가대표 중견수 다운 넓은 수비 범위를 뽐냈다.
LG는 지난해 출루왕(4할5푼6리) 홍창기라는 최고의 리드오프를 보유한 팀이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박해민까지 영입해 외야 수비 강화는 물론 홍창기-박해민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테이블세터진 구축을 준비했다. 홍창기가 개막 직전 허리통증으로 엔트리 합류에 실패하는 바람에 박해민 홀로 1번 타순을 책임졌지만 유격수 오지환과 함께 센터라인에 안정감을 선사하는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지난 겨울 소속팀에서 방출돼 찬바람을 맞았다가 새 팀을 구한 선수들 중에도 개막 시리즈에서 미친 존재감을 과시한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롯데 자이언츠를 떠나 SSG 랜더스에 새 둥지를 튼 베테랑 노경은은 3일 팀의 2선발로 나서 6이닝 무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됐다. 노경은은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거둬 나처럼 나이든 선수들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힘이 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NC 다이노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옮긴 임창민도 개막 2경기 연속 홀드를 거두며 방출 선수에서 단숨에 필승조로 급부상했다. 한화와 개막전 7회 1사 2루 위기에서 등판해 1과 3분의 2이닝을 피안타 없이 틀어 막았다. 3일 경기에서도 8회 두 번째 투수로 나서 삼진 2개를 곁들이며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임창민은 “몸 상태는 좋다”며 “첫 단추를 잘 끼워서 다행인데 이제 한 경기 했을 뿐이다.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KT에서 롯데로 팀을 옮긴 박승욱은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거치며 래리 서튼 감독의 신임을 얻어 개막 유격수 자리를 꿰찼다. 박승욱은 사령탑의 기대에 부응하듯 결승 2루타 포함 5타수 2안타 2타점 활약을 펼치며 개막전 히어로로 떠올랐다. 경기 후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지난해 방출됐을 때는 다시 야구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목표 하나로 준비했는데 개막전에 선발로 나서 감회가 더 남달랐다”며 “매 순간 해야 할 일들만 열심히 하려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