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의 벽’은 높았지만 그룹 방탄소년단(BTS)은 다시 한 번 세계 무대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BTS가 K팝 사상 첫 수상에 재도전했으나 아쉽게도 불발됐다.
지난해에 이어 BTS는 2년 연속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올랐다. BTS는 지난해 ‘버터’로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10주간 1위를 지키는 기록을 세웠다. ‘퍼미션 투 댄스’, 콜드플레이와의 협업곡 ‘마이 유니버스’로도 ‘핫 100’ 정상을 차지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만큼 수상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다.
이번 시상식에서 경쟁 상대는 쟁쟁했다. BTS는 저스틴 비버와 페니 블랑코의 ‘론리’, 콜드플레이의 ‘하이어 파워’, 레이디 가가와 토니 베넷의 ‘아이 겟 어 킥 아웃 오브 유’, 도자 캣과 시저(SZA)의 ‘키스 미 모어’와 함께 후보에 올랐다. 트로피는 도자 캣과 시저가 가져갔다.
그래미는 배타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른 대중음악상과 비교해 비(非)백인이나 여성 아티스트에게 벽이 높았다. 그래미는 투표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부터 후보 선정 위원회를 없애고 회원 1만2000명의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하기로 방식을 바꿨지만 이번에도 BTS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멤버들은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지민은 시상식이 끝난 뒤 브이 라이브 방송을 통해 “상을 받으면 아미 여러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컸는데 조금 아쉬웠다”며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정국은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시상을 할 때 슈가 형이 긴장했다”고 말했다. 제이홉은 “정말 퍼포먼스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많은 게 스쳐갔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BTS 멤버들은 “(이번 시상식에서) 좋은 무대를 보고 많은 자극을 받았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슈가는 “후보에 오른 것만 해도 벌써 두 번째다. 슬퍼할 일이 아니다”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변화를 거부하고 보수성을 그래미의 ‘유리천장’을 꼬집었다. 하지만 BTS가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음악적 성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올해 수상 실패에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수상 불발은 상당히 의외다. 그래미는 보수적이기 때문에 아시아 출신이면서 아이돌인 BTS를 배척하는 것 같기도 하다”며 “그래미는 연공서열을 따지는 느낌도 있어서 BTS가 2년 연속 후보에 올랐으니 내년에는 수상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BTS는 이번에 대기실이나 좌석 배치 등에서 그래미의 우대를 받았다. 단독공연과 기립박수 등을 통해 서도 입지가 탄탄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최지선 음악평론가는 “‘그들만의 잔치’에 구색 맞추려고 BTS를 초청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며 “음악산업의 형태가 예전과 달라지면서 그래미상의 의미도 예전 같지 않다. 듣는 사람들의 취향이 반영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해외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 지표 중 하나인데, BTS는 이미 성과를 이뤘다. 그래미상을 받지 않아도 위상이나 음악적 성과는 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규성 음악평론가는 “BTS는 이미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아무도 다지지 못했던 입지를 다졌고, 미개척지를 개척했다”며 “그래미상을 받지 못해도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다. 너무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수상은 불발됐지만 BTS는 시상식에서 단독 공연을 통해 21세기 팝 아이콘으로서 저력을 뽐냈다. 2020년부터 3년 연속 그래미 무대를 꾸며 온 BTS는 네 번째 퍼포머로 나섰다. 이날은 브릿지 부분에서 기타 리프를 강조한 새로운 리믹스 버전의 ‘버터’를 선보였다.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멤버들은 첩보 영화 속 요원을 콘셉트로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정국은 와이어를 타고 공중에서 내려오는 퍼포먼스를, 뷔는 올리비아 로드리고 옆에 앉아서 귓속말을 건네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무대를 마친 BTS는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임세정 최예슬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