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보다 변동성과 위험성이 큰 가상자산 시장에 분산투자 바람이 불고 있다. 이름 없는 ‘잡코인’에 큰돈을 한 번에 몰아넣기보다는 우량한 코인을 여러 개 사거나 적립식으로 나누어 구매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려는 시도다. 일부 거래소는 정식 상품까지 출시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은 등락이 큰 코인 판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면 보다 다양하고 고도화된 투자 서비스가 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4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코인 거래소 코빗은 지난 2월 말 분산에 방점을 찍은 묶음 및 적립식 투자 상품 ‘스마투’를 선보였다. 묶음 투자는 여러 종류의 암호화폐를 사전에 구성된 포트폴리오에 맞춰 한 번에 구매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메타버스·NFT(대체불가토큰)나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같은 테마별 코인을 묶은 상품, 시가총액이 큰 6개 코인을 묶은 상품 등 5종을 운용 중이다. 일종의 상장지수펀드(ETF)와 비슷하다.
적립식 투자는 코인 구매 시점을 분할했다. 널뛰는 암호화폐의 등락폭에 휘둘리지 않고 예약한 주기에 따라 반복·자동적으로 매수할 수 있다. 단기 투자나 묻지마 투자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가상자산 포트폴리오를 갖고 싶은 투자자를 겨냥한다. 코빗 관계자는 “단순 트레이딩 서비스가 아닌 투자자 편의성을 더하기 위해 상품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시장에서 한탕을 노린 묻지마 투자는 성행해왔다. 기관 비중이 높은 해외와 달리 개인 투자자 비중이 절대다수를 차지한 탓이다.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에는 시드머니가 적을수록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마이너 코인에 ‘몰빵’하라는 조언이 오고 간다. 위험한 투자법은 필연적으로 손실을 부른다. 지난해 신한은행이 펴낸 ‘미래설계 보고서’에 따르면 암호화폐 투자자 중 손실을 입은 경우는 약 56%로 돈을 번 사람보다 많았다.
분산투자는 손실을 줄이고 장기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종목과 시점을 분산하는 방식이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이유는 가상자산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암호화폐는 순환매 장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비트코인이 먼저 오르고, 이더리움이 상승을 주도한 뒤 여러 알트코인이 오르는 식이다. ‘대박’을 좇기 위해 한두 종목에 돈을 몰아넣었다가는 시장에서 소외될 수 있다.
다만 무작정 암호화폐를 여러 개 나누어 사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코인은 프로젝트마다 목적과 특징, 강점이 다르다. 주요 카테고리 별로 분산해 투자할 필요가 있다. 안전자산 성격의 비트코인과 플랫폼인 이더리움, 국제송금에 강한 리플, 스테이블 코인과 연결된 루나 등을 골고루 사는 식이다.
금융상품 개발을 본업으로 하는 은행과 증권사가 가상자산 시장에 진출하면 다양한 분산투자 서비스가 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향후 비트코인 현물 ETF가 증시에 출시되면 분산투자는 보편화될 전망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관련 ETF 상품들을 두고 승인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