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누구를 위한 명분 싸움인가?

입력 2022-04-03 19:26

정권 교체를 앞두고 현 정부와 다음 정부 간에 여러 지점에서 명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산업은행 이전, 여가부 폐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정치에 있어서 명분은 중요한 문제이다. 명분은 정치 행위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명분이 국민을 향해 있지 않고 자신이 속한 집단을 향해 있으면 그 명분 싸움은 진흙탕 개싸움과 다르지 않다.

우리 역사에 이런 부류의 명분 싸움이 있었다. 조선 현종 때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상복 입는 기간을 놓고 서인과 남인이 두 차례에 걸쳐 벌인 ‘예송 논쟁’을 보자. 이 논쟁은 한창 공부하는 학생들조차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논쟁이었던지 변별력을 가리는 국사 시험 단골 메뉴 중 하나가 되었다.

1차 예송 논쟁은 효종이 죽은 후 발생했다. 그의 계모인 자의대비가 효종의 상(喪)에 몇 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는 가를 두고 일어난 논란이었다. 성리학에서는 자식이 부모에 앞서 죽었을 때 그 부모는 그 자식이 적장자인 경우는 3년, 그 이하 차자는 1년을 입도록 규정하였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이었으므로 효종의 왕위 계승은 적장자 승계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여기에는 예론적 배경이 있다. 즉, ‘왕가 의례는 종법에 우선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관점 차이가 반영되어 있었다. 효종이 인조의 적통을 계승했지만, 종법상으로는 둘째이므로 자의대비는 종법에 따라 1년만 입으면 되었다. 하지만 1년만 상복을 입으면 적장자가 아니라 차자라고 인정한 셈이 되는 것이어서 곤란했다.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은 종법에 따라 1년상을, 반면 윤휴·허목·윤선도 등의 남인들은 왕통에 따라 3년상을 주장하면서 예송 논쟁이 본격화되었다. 남인의 논리는 차자라도 왕위에 오르면 장자나 마찬가지여서 자의대비는 3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서인과 남인의 입장 차이는 종법 적용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명분이었으나, 실은 권력구조와 연계되어 있어 격렬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차 예송 논쟁은 1년상으로 결론이 나면서 서인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효종이 장남인가 차남인가에 대한 논란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2차 예송 논쟁의 빌미로 작용했다.

2차 예송 논쟁은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가 죽자 자의대비가 어떤 상복을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다. 1차 예송 논쟁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효종이 장자인가 차자인가의 문제가 인선왕후가 죽으면서 다시 표면화되었다. 즉, 효종을 장자로 인정한다면 인선왕후는 장자의 아내이므로 기년복(1년)을 입어야 하지만, 효종을 차자로 본다면 대공복(9개월)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인은 대공복(9개월)을 주장했고, 남인은 기년복(1년)을 주장했다. 현종은 아버지인 효종을 차자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남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 논쟁으로 인해 송시열계 서인 세력은 몰락하고 남인 정권이 들어섰다.

서인과 남인, 두 정치세력의 치열한 명분 싸움은 과연 누구를 향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명분 싸움이 과연 백성의 삶에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

현재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은 조선시대의 백성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우리 국민은 정치가 삶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대통령을 탄핵하기도 하고 정권도 쉽게 교체한다. 이제 불필요하게 소모적 논쟁을 일으키는 명분 싸움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을 정치권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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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