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 절반 줄었지만, 사랑과 사연 넘쳤다’…코로나 2년 ‘밥퍼’봉사 해보니

입력 2022-04-03 19:20 수정 2022-04-03 19:39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지난 2년은 무료급식봉사 단체들에게도 도전의 시간이었다. 자원봉사자들 수는 코로나 전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반면 ‘노숙인’ ‘어르신’으로 불리는 무료급식 수혜자들은 더 늘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주는 기쁨과 보람은 여전했다. 자원봉사자들과 수혜자들에게선 저마다 특별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 3년째, 봄의 길목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무료급식봉사 단체인 밥퍼나눔운동본부의 ‘밥퍼’ 봉사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무료급식 수혜자들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밥퍼나눔운동본부에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도시락을 받고 있다.

‘1식3찬’ 식판에서 ‘도시락’으로
지난달 31일 오전 8시20분,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6번 출구를 나와 작은 굴다리를 지나서 밥퍼나눔운동본부에 도착했다. 지난 34년 간 다일공동체가 이어온 밥퍼 사역의 역사를 요약한 영상을 시청한 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쳤다.

오전 9시, 배식장에서 다른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날 봉사자는 총 9명이었다. 밥퍼본부에 따르면 봉사자들은 평일 기준으로 2~3명 선이었다. 코로나 이전(15명 안팎)에 비해 대폭 줄었다. 본부 측은 봉사자 인력 상황에 따라 반찬 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등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코로나는 밥퍼 배식 작업도 바꿔놨다. 코로나 이전에는 1식 3찬을 기본으로 식판에 음식을 담아 수혜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지금은 일회용 용기에 밥과 반찬을 담은뒤 ‘3분 짜장’이나 간편식 육개장 같은 레토르트 식품에 생수, 빵 등을 봉지에 넣어 도시락처럼 만들어 전달했다. 봉사자들은 각자 맡은 메뉴를 봉지에 담고 포장했다.

국민일보 인턴기자들이 밥퍼 자원봉사를 위해 앞치마와 두건을 착용하고 있다.

오전 11시부터 배식이 시작되지만 무료급식 수혜자들은 두 시간 전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대부분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중장년 층과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자원봉사자 절반 줄고, 수혜자는 더 늘어
배식이 시작되자 이들은 미리 밥퍼본부로부터 발급받은 바코드와 신분증을 제시한 뒤 배식장에 입장했다. 이날 메뉴는 밥과 두부조림, 김치, 상추 무침이었다. 여기에 3분 짜장과 빵, 생수도 제공됐다.

밥퍼본부 김미경 부본부장은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에서 찾아오는 70~80대 수혜자가 대부분이다. 가족이 없는 기초생활수급권자가 30%정도 달한다”면서 “이를 제외한 수혜자들은 가족이 있더라도 돌봄을 받지 못하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이후 무료급식 수혜자들은 이전보다 20~30% 늘었다. 종전에는 하루 700~800명 선이었는데 1000명 안팎에 달하고 있다. 김 부본부장은 “(코로나 때문에) 하루 이틀은 안 나올 수 있지만, 굶고 살 수는 없으니 더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당수 무료급식봉사 단체가 코로나로 활동을 중단하면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밥퍼로 수혜자들이 몰린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밥퍼 자원봉사자들이 배식장에서 수혜자들에게 줄 음식들을 포장하고 있다.

임명자(82)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아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게 힘들어 매일 밥퍼 급식을 이용한다. 연신 “고맙다”고 말하는 임 할머니는 “죽을 나이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걸 받으러 다니는 나 스스로가 한심하다”면서도 “밥퍼는 나를 살려주는 사람들이다. 이보다 고마운 사람이 있을까”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청량리 시장 인근 고시원에 머물고 있는 박진성(62)씨도 밥퍼 단골이다. 박씨는 “매일 공원에 나와 소일하다가 무료해서 요일 별로 다른 교회를 찾아가 밥을 얻어 먹다가 교회도 다니게 됐다”면서 “지금은 돈이나 밥 때문에 교회를 다니진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밥퍼 봉사, 한끼의 소중함 깨달아”
밥퍼 본부에 대한 수혜자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올 초 다일공동체와 서울시는 밥퍼의 건물 증축 문제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자칫 밥퍼 사역이 중단될 우려도 제기되고 있었다. 김 부본부장은 “어르신들은 처음에 모르는 척 하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데 누가 그걸 못하게 막느냐’며 자신이 인터뷰하겠다고 나서더라”고 귀띔했다. 현재 갈등은 일단락됐고, 밥퍼 사역은 종전대로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오후 1시. 배식과 뒷정리에 이어 다음날 메뉴 준비까지 마쳤다. ‘오늘도 잘 끝났구나’ 자원봉사자들에게선 안도하는 표정이 느껴졌다. 저마다 특별한 사연도 들을 수 있었다. 대학생인 류재희(23·여)씨는 “코로나로 대외 활동이 어려운 대학 생활이었다”면서 “사회와 연결점을 찾다가 밥퍼 봉사를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견 피부미용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현숙(60·여)씨는 “지인이 여기서 봉사하다가 코로나로 일손이 부족하다며 도움을 요청해 왔는데, 벌써 3년째 접어든다”면서 “종교는 없지만 밥퍼 봉사를 하면서 종교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과 수도권 등지에서 온 무료급식 수혜자들이 밥퍼 본부 앞에 길게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반나절 남짓 몸 담아본 밥퍼 봉사는 누구나 한번쯤 동참해볼 만한 봉사 같았다. 만들어진 음식을 나누고 포장하는 일이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료 급식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손길을 거치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밥’을 기다리고 있는지 확인하고 공감하는데 충분했다. 한끼의 소중함이 와닿는 시간이었다. 밥퍼자원봉사는 ‘1365 자원봉사포털’ 홈페이지나 ‘밥퍼나눔운동본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박이삭 유경진 서은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