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의 스타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 후 고국에서 역풍을 맞았다. 러시아 정치가가 네트렙코를 ‘반역자’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노보시비르스크 국립오페라발레극장은 6월 초 예정됐던 네트렙코의 공연을 취소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에서 악화한 여론에 지난 2월 말 공연 중단을 선언했던 네트렙코는 지난달 30일 전쟁 반대 성명과 함께 5월 복귀를 발표했었다. 러시아 예술가들이 전쟁 반대 입장을 발표하지 않을 경우 서방 무대에서 퇴출당하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네트렙코는 클래식계에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함께 ‘친(親)푸틴’ 예술가로 꼽히며 잇따라 공연이 취소됐다.
네트렙코는 지난 2012년 푸틴의 대선 출마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2014년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지지하는 사진을 SNS에 올린 바 있다. 또한, 푸틴 대통령도 네트렙코 50번째 생일 기념 콘서트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치르도록 했었다. 하지만 네트렙코는 최근 성명에서 “나는 평생 푸틴 대통령과는 예술상을 받거나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을 때 등 몇 차례밖에 만나지 않았다. 그 외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은 적이 없으며 오스트리아 거주하며 세금을 내고 있다”고 해명했다.
네트렙코의 성명에 대해 서방 공연계는 불충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나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메시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피터 갤브 총감독의 경우 “우리는 태도를 바꿀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안나가 푸틴과 오랫동안 진실하고 완전하게 관계를 끊었다는 것을 보여줘야 기꺼이 대화를 나누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서방 공연계에 복귀하기 위해 성명을 낸 네트렙코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러시아 국가두마(의회) 의장인 뱌체슬라프 볼로딘은 자신의 SNS에 “(네트렙코의 성명은) 반역이다. 목소리는 있지만, 양심이 없다. (네트렙코는) 조국애보다 부와 영예에 대한 욕망이 더 컸다”고 썼다.
앞서 푸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작전(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침략이나 전쟁 대신 사용하는 표현)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반역자와 쓰레기다. 러시아 국민은 이들을 색출해 사회를 정화해야 한다”며 애국정신을 강조했다. 그리고 ‘푸틴 친위대’인 볼로딘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작전을 지지하지 않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물러나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결국, 네트렙코의 성명 이후 시베리아에 있는 노보시비르스크 오페라발레극장은 “네트렙코가 조국의 운명보다 자신의 국제적 경력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며 6월 2일 예정됐던 네트렙코의 공연을 취소했다. 이어 “조국을 거부하는 예술계 인사가 있다고 해서 우려할 필요 없다. 우리나라에는 인재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어제의 스타는 이제 신인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네트렙코는 이번 러시아 공연 취소에 대해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네트렙코가 조국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기피 인물’이 될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전쟁을 비난하되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는 형태로 줄타기를 했지만,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예술 전문가인 사이먼 모리슨 프린스턴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네트렙코는 어떻게 하든 비난받을 운명”이라면서 “네트렙코는 수년간 친 푸틴 행보 때문에 서방에서 공연이 취소됐다. 그리고 국제적 커리어를 되살리기 위해 전쟁을 비판함으로써 러시아의 운명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추구한다는 이유로 고국에서 비난받았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딜레마에 빠진 가운데 네트렙코는 5월 26일 프랑스 파리에서 필하모니 드 파리 협연으로 복귀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