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KDB산업은행(산은)이 설립 이후 최대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산은의 부산 이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산은 민영화 재추진까지 검토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인수위 내부에선 산은이 대우조선해양의 ‘알박기 인사’ 논란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인수위 방침을 따르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불만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산은은 대우조선해양 지분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엔 산은을 포함한 정책금융 전반에 큰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인수위 한 관계자는 3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산은은 현재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도록 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있어 내부적으로 이에 대한 검토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에 대한 부정적 기류에는 최근 알박기 논란과 함께 문재인정부에서 산은이 추진했던 기업 구조조정이 성과를 내지 못한 점이 영향을 끼쳤다. 산은은 쌍용자동차 매각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 무산에 대한 책임론까지 불거진 상태다. KDB생명 매각 추진 역시 지지부진하다. 아시아나항공 매각도 매끄럽게 추진되지 못했다.
산은 측은 쌍용차 매각 문제 등에 대해선 매각 정책을 직접 설계할 수 없는 입장에 있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산은은 이미 정치적으로도 ‘미운털’이 깊이 박혀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2020년 당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출판기념회에서 “가자 20년”이라며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지지하는 듯한 건배사를 한 후 친문 인사로 분류된다.
다만 산은 민영화 논의가 새 정부에서 단기간에 구체화하기는 쉽지 않다. 산은 민영화 필요성은 정책금융 명목으로 부실기업에 지나친 자금 지원을 해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과 맞물려 있다. 산은의 낙하산 인사 문제도 개선 과제로 꼽힌다. 하지만 섣불리 정치 논리에만 매몰돼 산은 민영화를 추진했다가는 매몰 비용만 키우는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산은 민영화는 이명박정부 출범 초기인 2008년 세계적 투자은행(IB) 설립을 목표로 추진됐다. 하지만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박근혜정부 때인 2013년 8월 금융위원회는 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안을 발표하면서 산은 민영화는 백지화됐다.
산은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산은은 이날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역대 최대 수준인 8331억원의 배당금 지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산은은 “대규모 이익을 재원으로 정부 앞으로 역대 최대 규모의 배당금을 지급함으로써 국내 대표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국가 재정건전성 확충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 민영화를 추진하려면 기업 구조조정을 시장에만 맡길 경우 벌어질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하는 치밀한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