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 아버지 ‘간병살인’ 비극…20대 청년, 징역 4년 확정

입력 2022-03-31 11:30 수정 2022-03-31 13:28

뇌출혈로 쓰러져 전신 마비된 50대 아버지를 방치해 영양실조로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가 대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확정받았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채 홀로 생계와 간병을 떠안아야 했던 청년의 사연이 알려지며 존속살해 혐의 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으나 법원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31일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A씨(23)의 상고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단둘이 살아오던 아버지 B씨(56)가 2020년 9월쯤부터 심부뇌내출혈과 지주막하출혈 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치료비를 부담하기 어려워지자 지난해 4월 B씨를 퇴원시켜 집에서 돌보기 시작했다.

아버지 B씨는 왼쪽 팔다리 마비 등으로 혼자 거동할 수 없고 음식 섭취도 도움이 필요해 24시간 간병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러나 A씨는 퇴원 이튿날부터 아버지 B씨에게 처방약을 주지 않고 치료식도 적게 주다 1주일 뒤부터는 홀로 방치해 5월쯤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망 당시 B씨의 체중은 약 39㎏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영양실조 상태에서 폐렴, 패혈증 등이 발병해 사망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됐다.

A씨는 처음 경찰 조사에서 존속살해 고의를 부인했으나 검찰 수사 단계에서는 ‘아버지를 퇴원시킨 바로 다음 날부터 기약도 없이 2시간마다 한 번씩 아버지를 챙겨주고 돌보면서 살기 어렵고, 경제적으로도 힘드니 돌아가시도록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자포자기 심정으로 간병을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하급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퇴원할 때 병원에서 받아 온 처방약을 피해자에게 단 한 차례도 투여하지 않은 점을 비롯해 피고인 자백 진술을 더해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퇴원시킨 다음 날부터 피해자를 죽게 할 마음을 먹고 죽을 때까지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점이 인정된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다만 어린 나이로 경제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간병 부담을 홀로 떠안게 되자 미숙한 판단으로 범행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감안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A씨 사연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도 전인 어린 나이에 생계와 간병을 홀로 지는 ‘늪’에 빠진 가족 돌봄 청년의 문제에 대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A씨가 월세를 내지 못하고 도시가스, 인터넷 등이 끊기는 등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사정이 알려지면서 2심 판결을 앞두고 탄원 여론도 일었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도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묵묵히 현실을 열심히 살았을 청년에게 주어지지 않은 자립의 기회, ‘자기든 아버지든 둘 중 한 명은 죽어야만 끝나는’ 간병의 문제에 대해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 등 문제가 없다고 보고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