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아틸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잇따라 국내 초연

입력 2022-03-31 05:00 수정 2022-03-31 09:06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국내 초연으로 선보이는 '아틸라'와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포스터.

‘이탈리아 오페라의 완성자’ 주세페 베르디(1813~1901)는 전 세계 오페라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작곡가다. 국내도 예외는 아니지만, 베르디가 남긴 26편 가운데 아직도 공연되지 않는 작품이 절반 가까이 된다.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창단 60주년을 맞아 국내 초연하는 ‘아틸라’(4월 7~10일)와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6월 2~5일)도 여기에 해당한다. 두 작품 모두 역사에서 소재를 찾았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베르디의 9번째 오페라인 ‘아틸라’는 5세기 전반 유럽에 거대한 영토를 세운 훈족 아틸라왕을 소재로 했다. 동서로 분리되어 있던 로마제국 중 동로마는 아틸라왕에게 조공을 바치며 안전을 보장받으려 했다면, 서로마는 아틸라왕의 침입에 맞서 수차례 전투와 협상 끝에 훈족의 서진을 막아냈다. 당시 훈족을 피해 사람들이 갯벌 지대에 만든 도시가 바로 베네치아다. 그런데, 아틸라왕은 어이없게도 서로마와 전투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게르만족 소녀를 후궁으로 맞아들인 첫날 밤 죽었다. 게르만족 전설에선 소녀가 가족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아틸라왕을 죽였다고 한다.

‘아틸라’는 베르디가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의 의뢰로 작곡한 작품으로 1846년 초연됐다. 서로마 제국을 침범한 아틸라왕에게 맞서는 에치오 장군,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아틸라왕에게 접근하는 오다벨라, 오다벨라의 연인인 기사 포레스토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틸라왕의 인생 후반부 에피소드들을 참고한 이 작품은 로마가 훈족에게 반격을 가하고 오다벨라가 아틸라를 죽이는 것으로 끝난다.

잔카를로 델 모나코가 연출을 맡은 국립오페라단의 ‘아틸라’ 무대와 의상 이미지. 국립오페라단

이 작품은 초연 직후 웅장한 선율과 애국적인 내용으로 이탈리아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다만 대본가가 중간에 바뀌는가 하면 베르디가 두 대본가와 이견을 조율하지 못해 결말이 다소 맥없이 끝나버린다. 이 때문에 베르디가 이후 많은 걸작을 쏟아낸 뒤엔 점점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 루제로 라이몬디, 새뮤얼 래미 등 걸출한 베이스들이 아틸라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끌면서 부활했다. 오다벨라(소프라노)와 포레스토(테너)의 이중창도 아름답지만, 아틸라(베이스)와 에치오(바리톤)의 이중창은 웅장한 남성 저음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국립오페라단의 ‘아틸라’는 20세기 전설적인 이탈리아 테너 마리오 델 모나코의 아들인 잔카를로 델 모나코가 연출을 맡았다. 연출가인 아들 델 모나코는 1965년 데뷔 후 전 세계에서 다양한 오페라를 연출했으며 독일 카셀극장과 본극장, 프랑스 니스오페라극장의 극장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 아틸라 역은 전승현과 박준혁, 에치오 역은 유동직과 이승왕, 오다벨라 역은 임세경과 이윤정, 프레스토 역은 신상근과 정의근이 맡았다.

베르디의 19번째 오페라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1282년 3월 시칠리아를 지배하던 프랑스인들이 대학살 된 ‘시칠리아 만종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시칠리아는 로마 제국 이후 1861년 이탈리아반도가 통일될 때까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다만 시칠리아 지배자들은 대대로 시칠리아인과의 공존을 꾀했다. 그런데, 13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출신 만프레디가 시칠리아 왕이 된 후 프랑스 샤를 왕이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만프레디를 죽이고 시칠리아를 빼앗았다. 이후 프랑스가 수탈을 일삼자 시칠리아인들이 부활절 저녁기도 종소리에 맞춰 프랑스인 2000여 명을 학살하는 등 봉기했다. 그리고 만프레디의 딸이 왕비로 있는 아라곤 왕국이 시칠리아에 군사를 보내면서 예전처럼 공존 정책을 토대로 지배하게 됐다.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가 타계하기 2년 전의 모습. 위키피디아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파리 오페라극장이 파리에서 열린 제1회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베르디에게 의뢰한 작품으로 1855년 초연됐다. 프랑스의 유명 작가 외젠 스크리브가 대본을 쓴 이 작품은 프랑스에 점령된 후 대항하던 시칠리아 공녀 엘레나와 저항군의 중심인물 아리고, 아리고의 친아버지인 몽포르테 프랑스 총독의 이야기를 다뤘다. 총독이 자신의 아버지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된 아리고의 갈등, 엘레나와 아리고의 결혼식 종소리를 신호로 저항군이 프랑스인들을 습격해 피의 대참사가 벌어지는 등 긴장감이 넘친다.

이 작품은 파리 오페라극장의 의뢰를 받은 만큼 프랑스의 ‘그랑 오페라(grand opera)’ 스타일로 만들어졌다. 즉, 그랑 오페라의 특성인 프랑스어, 비극적 소재, 5막 구성, 화려한 무대 미술과 장치, 발레 등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작품은 초연 당시 호평을 받았지만 프랑스인이 학살당하는 내용 때문에 프랑스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대신 이탈리아에서 바로 이탈리아어 버전이 선보인 뒤 꾸준히 공연되게 됐다. 덕분에 이 작품은 그랑 오페라 형식이지만 이탈리아어로 공연되는 버전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

국립오페라단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는 지난 2016년 바로크 오페라 ‘오를란도 핀토 파초’로 국내 관객과 만났던 이탈리아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가 연출을 맡았다. 엘레나(소프라노) 역의 서선영과 김성은, 아리고(테너) 역의 강요셉과 국윤종​, 몽포르테(바리톤) 역의 양준모와 한명원 등이 출연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