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우크라 구호편지, 구호품 구하느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다

입력 2022-04-01 00:05
이석진(왼쪽) 목사가 헝가리개혁교단 '사랑의 봉사단' 몰라르(가운데) 목사에게 구호품 대량 구매를 위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제공

한국을 떠나와 헝가리에서의 1일차 여정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 구호품 구매를 위해 찾은 대형 마트에서 긴급하게 헝가리개혁교회 산하 ‘사랑의봉사단’에 연락을 취했다. 다행히 헝가리 데브레첸 지역 사랑의봉사단 책임을 맡고 있는 몰라르 목사를 다음 날 아침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둘째 날 첫 일정은 몰라르 목사와의 미팅이 됐다. 사랑의봉사단이 구호품 대량 구입과 구호품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사랑의봉사단은 헝가리 정부의 허가를 받은 구호 기관이라 간단한 서류 신청만으로 구호품을 우크라이나로 자유롭게 넘길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몰라르 목사와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가장 시급한 문제인 구호품 구입과 관련해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스스럼없이 웃으며 얘기했다. “사랑의봉사단 이름으로 구호품을 구입해도 좋습니다.” 놀란 눈으로 “어젯밤에 구호품 구매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는데 이렇게 흔쾌히 허락해줘서 깜짝 놀랐다”며 기뻐하자 몰라르 목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긴급구호를 준비하면서 플래카드와 구호품에 부착될 스티커에 우크라이나어와 헝가리어로 번역해 ‘힘내세요, 한국교회와 헝가리교회가 함께 합니다’라고 새겨 넣었다. 그 문구가 말 그대로 협력을 통한 현실이 된 것이다. 이렇게 어디를 가나 교회는 예수 안에서 한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헝가리개혁교회 '사랑의 봉사단' 사무실 앞에 게양된 헝가리 국기.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제공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와 구호품 구입을 위해 어제 방문했던 대형 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트 대표가 나와 헝가리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선교사님 표정이 굳어져 갔다. 느낌이 쌔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랑의봉사단 이름으로도 밀가루 식용유 설탕은 구입할 수 없고 하루 전 예약해뒀던 물건도 다 줄 수 없다고 한다. 매장 대표는 “헝가리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난감했다. 일단 오늘 구매 가능한 물건이라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팀을 나눠 다른 매장에서도 구호품을 구매하기로 하고 흩어졌다. 구호품 리스트를 다시 정리하면서 밀가루 진열대로 향했다. 동행하며 안내하던 직원이 밀가루 앞에서 고민을 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기회를 놓치치 않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플리즈(Please)”를 외쳤다.

직원은 “밀가루 상표가 다르면 제한된 수량만큼 상표별로 살 수 있다”고 귀띔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상표가 각기 다른 제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최대량을 쓸어 담았다. 그렇게 밀가루 4.8톤이 구호품 리스트에 담겼다. 이어 식용유 앞에 섰다. 직원이 가만히 보더니 “10리터 짜리는 제한에 걸리지 않는데 이걸로 구입하겠느냐”고 물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식용유 1.1톤을 마련했다. 이번엔 설탕이었다. 당을 보충할 음식이 갈수록 줄어 우크라이나에서 꼭 구입해 달라고 했던 품목이다. 천사 같은 직원이 또 이야기한다. “그냥 설탕은 제한이 있지만 일반적인 것보다 더 가는 설탕은 제한이 없습니다.” 그렇게 설탕 1.1톤까지 일사천리로 구매가 이뤄졌다.

구매를 위해 다른 마트로 향했던 팀에게도 반가운 연락이 왔다. 식용유 밀가루 설탕을 3톤씩, 쌀 1톤도 함께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천국과 지옥을 오간 것 같은 하루였다. 이제 이 물건들을 옮기는 일이 남았다. 3회에서 계속.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