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4개월째 경찰서 앞 ‘흉물’로 방치된 까닭은?

입력 2022-03-30 20:59
서울 양천경찰서 주차장에 사고로 반파된 차량이 놓여져 있다. 이의재 기자

30일 서울 양천구 양천경찰서 교통조사계 앞 주차장에는 파란색 방수포에 뒤덮인 차량 잔해가 방치돼 있었다. 4개월여 전 사고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파손된 벤츠 차량이 흉물스러워 임시로 덮어둔 것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일 오전 2시10분쯤 서울 양천구 신월동 신월IC 인근에서 차량 전복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40대 직장인 A씨는 이 차량을 몰고 주행하다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아 사고를 냈다. 차량은 그대로 전복됐고 A씨는 현장에서 숨졌다.

사고가 나자 경찰은 즉시 이 차량을 임시로 인도해 교통조사계 앞으로 옮겼다. 보통 교통사고가 나면 수리가 가능한 차량이면 소유주나 보험사가 직접 견인해 처리한다. 하지만 이 사고의 경우 운전자가 이미 사망했고 차량도 파손 정도가 심해 경찰에 맡겨졌다. 경찰은 딱히 차량을 둘 곳이 없어 교통조사계 앞에 차량 잔해를 보관 중이다. 파란색 방수포로 차체가 드러나는 것은 막았지만 뒤틀린 차량 프레임과 검게 그을린 자국 등 사고의 흔적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손된 차량이 100일 넘게 방치되고 있는 것은 A씨의 음주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탓이다. 경찰은 운전자가 사망하면서 음주 여부를 호흡으로 측정할 수 없었다. 이런 경우 혈액을 채취해 혈중알코올농도를 검사하는데, 사고 당시 A씨의 대동맥은 끊어져 혈액이 대부분 소실됐고, 차량 화재까지 발생해 남은 혈액마저 오염됐다. 결국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해 근육, 장기 등의 조직을 채취해 체내 알코올을 감정하기로 했다.

감정 결과에 따라 해당 차량을 넘겨 받는 주체와 보험금이 달라진다. A씨가 음주 상태였다면 차량은 유가족으로 인도된다. 반대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면 보험사 측이 차량을 처분한다. 양천서 관계자는 “인계 대상뿐 아니라 보험료도 억대로 갈릴 수 있어 국과수 판단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부검 감정은 독물, 약물 등의 검사 결과를 모두 취합하기 때문에 수 개월이 소요될 수 있다. 양천서 관계자는 “결과가 나오는 대로 차량을 인도하겠다”고 밝혔다.

전성필 이의재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