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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기관 투자자가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진입하면 극단적인 가격 변동성은 줄어들고 시장의 파이가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은행과 증권사, 기업 같은 기관들이 안정적인 자금력과 분석적인 가치 평가 방법으로 가상자산 시장을 한층 성숙시킬 거란 이야기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관 비중이 늘어난 만큼 코인 가격이 폭락하는 ‘크립토 빙하기’가 다시 도래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내놓았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김치 코인’ 중에서는 루나(LUNA)의 사업모델이 블록체인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 센터장은 30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관 투자자의 등장이 개인 위주의 국내 가상자산 시장을 크게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가상자산 전문 리포트를 발간하는 국내 유일의 기관이다. 정 센터장은 골드만삭스와 UBS, 노무라증권 등 전통적인 금융권에서 종사하다가 2018년 코빗으로 넘어와 리서치센터를 이끌고 있다.
정 센터장에 따르면 해외와 달리 국내 가상자산 거래의 99.9%는 개인 투자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기관들로서는 투자하고 싶어도 방법이 마땅치 않다. “국내 기관들이 투자하려면 몇 가지 산을 넘어야 돼요. 우선 은행이 법인에 가상자산 거래소로의 원화 입출금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고 있어요. 고객 자산을 활용해 펀드 상품을 만드는 길도 막혀 있습니다.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불명확해 눈치를 보는 측면도 있죠.”
반면 해외에서는 몇 년 전부터 기관의 코인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정 센터장은 “코인베이스가 발표하는 실적을 보면 암호화폐 거래량의 60% 이상이 기관 몫”이라고 말했다. 가상자산 업계의 오피니언 리더 중에도 전통적인 금융권 출신 인사가 많다. 개발자가 주도권을 쥔 국내 시장과는 상황이 다르다.
정 센터장은 기관의 참여가 늘어나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질적으로 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1990년대 이후 국내 증시에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이 들어오며 시가총액이 커지고 투자법이 고도화됐던 장면에 비견했다. “전문 지식과 자금을 갖고 있는 기관이 들어오면 가상자산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고 변동성도 적당한 수준으로 줄어들 겁니다. ‘잡코인’에 우르르 쏠리는 관행도 일정 부분 정돈돼 건전해질 것으로 봅니다.”
“‘크립토 빙하기’ 다시 올 가능성 낮아”
가상자산 투자자들에게 2018~2020년은 끔찍한 기억이다. 비트코인을 비롯해 모든 암호화폐가 폭락하며 투심이 얼어붙었다. 코인을 퇴출시키겠다는 각국 정부의 위협이 난무했고, 업계에는 ‘탈블(탈 블록체인)’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이 같은 크립토 빙하기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남아있다. 정 센터장은 과거와 같은 폭락장이 짧은 시간 안에 재현되긴 어렵다고 밝혔다.
“빙하기가 다시 올 가능성은 상당히 떨어졌다고 봐요. 과거 빙하기 직전에는 코인 가치가 전고점의 20배를 넘어서는 폭등장이 있었는데, 지난해는 그 정도 상승폭은 아니었거든요. 산이 높지 않은 만큼 골도 깊지 않은 거죠.” 정 센터장은 비트코인 반감기의 위력이 감소하고 기관의 가상자산 보유량이 늘어난 것도 이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에 대해서는 시장의 기대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대보다 금리가 크게 오를 경우 위험자산으로 취급되는 코인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정 센터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예고한 연내 7차례의 금리 인상은 최근 급락장에서 반영됐다”며 “그보다 더 금리가 높아진다면 가상자산 시장도 위축될 수 있다”고 했다.
정 센터장은 스테이블 코인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나 유로화 등 법정 화폐와 1대 1로 가치가 고정돼있는 암호화폐다. 지난해 테더(USDT)와 USDC, BUSD 3대 스테이블 코인의 시총은 큰 폭으로 늘었다. 그는 “두 번째로 시총이 큰 USDC가 1위인 테더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스테이블 코인 시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 센터장은 루나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봤다. 루나는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의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조절하는 토큰이다. 한국 기업 테라폼랩스가 출시·운용하고 있다. “루나 팀은 블록체인의 속성을 잘 알고 네트워킹을 글로벌하게 활용할 줄 아는 것 같아요. 다른 김치 코인들은 사업 범위를 자꾸 한국으로만 한정 짓는데 그래서는 생태계가 커지기 힘듭니다.” 가상자산 데이터 업체 쟁글에 따르면 루나 코인은 최근 한 달간 36.7% 상승, 12만6000원대에 머물러 있다.
정 센터장은 “가상자산은 앞으로도 다양한 실험을 할 것”이라며 “많은 실험이 실패하겠지만 그중 일부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시세의 단기적인 움직임에 매몰돼 ‘묻지마 투자’는 하지 말라고 그는 권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