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브로바리 지역 셰첸코브의 작은 마을에 살았던 나탈리아(33·가명)는 지난 9일 끔찍한 일을 겪었다. 남편이 러시아군에 살해됐고, 본인은 성폭행을 당했다. 나탈리아는 “러시아군이 내 머리에 총을 들이대면서 ‘당신 남편이 나치이기 때문에 총으로 쐈다’고 했다. 그리고는 옷을 벗으라고 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28일(현지시간) 최근 우크라이나 검찰청이 수사를 개시한 ‘러시아군 성폭행 사건’ 첫 사례인 나탈리아의 얘기를 전했다. 러시아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우크라이나 피해자가 언론과 인터뷰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탈리아는 “러시아 측이 사건의 책임을 회피하고 러시아 병사들은 성폭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식으로 부인하는 걸 보고 인터뷰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탈리아와 그의 남편, 4살 아들은 평화로운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부부가 직접 나무와 돌로 지은 작은 집도 있었다. 그들의 첫 번째 집이었다. 다음 달 24일은 부부의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념일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
러시아군이 이 마을까지 밀고 들어온 뒤 나탈리아 가족의 행복은 산산조각 났다. 그는 그때의 일을 작은 목소리로 털어놨다. 옆에 잠든 아들이 들을까 그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망을 아직 알지 못한다.
지난 8일 러시아군은 키이우를 장악하기 위해 브로바리로 밀고 들어왔다. 러시아 침공 소식을 들은 나탈리아 부부는 ‘여기엔 민간인 가족이 있을 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것’이란 의미로 집 문에 하얀 천을 걸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나탈리아 부부는 집 밖에서 한 발의 총성과 문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두 손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가보니 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는 반려견이 보였다. 총을 겨누고 있는 러시아군도 눈에 들어왔다.
나탈리아는 러시아군이 처음에는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한 병사는 “여기에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며 “위협할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려견을 죽인 병사는 총을 쏜 것을 사과하며 자신도 고향에서 아내와 함께 개를 길렀다고 말했다.
자신을 러시아군 사령관 미하일 로마노프라고 밝힌 군인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당신과 나는 연애를 하게 될 것”이라며 나탈리아에게 추파를 던지기도 했다. 일부 병사들은 술에 취한 것처럼 보였다고 나탈리아는 말했다.
상황이 갑자기 급박하게 바뀐 건 한 병사가 남편 차 안에 있는 군복을 발견한 뒤였다. 러시아군은 공격적으로 돌변했다. 차에 총을 쏘며 윽박질렀다. 그리곤 남편을 ‘나치’라 욕하며 데리고 나가 총으로 쏴 살해했다.
경악하는 나탈리아를 향해선 “입을 다물지 않으면 당신 아들을 데리고 와서 집 곳곳에 버려진 엄마의 뇌수를 보여주겠다”고 협박했다. 죽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이후 러시아군은 나탈리아에게 옷을 벗으라고 한 뒤 차례대로 돌아가며 성폭행을 저질렀다. 범행 내내 나탈리아 머리에 총구를 겨눈 채였다. 그동안 아들은 어두운 보일러실에 들어가 울고 있었다.
나탈리아는 술 취한 러시아군이 잠들자 아들을 데리고 몰래 탈출해 이웃집으로 피신했다. 이후 자신의 친정 부모의 집으로 옮긴 뒤 다른 지역으로 대피했다.
나탈리아는 “남편 시신을 수습하러 돌아갈 수도, 그를 묻어줄 수도 없다”며 “아직 러시아군이 그 마을을 점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피해자들이 두려움 때문에 침묵을 택할 것이고 또 많은 사람들은 이런 끔찍한 일이 실제 일어났다는 걸 믿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그는 “아들이 아직 아버지가 숨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아빠에게 줄 빵도 같이 사자’고 한다”고 흐느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군이 조직적으로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해 반드시 가해자들을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