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하던 ‘카플레이션(Car+Inflation, 자동차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이 현실로 바싹 다가오고 있다. 테슬라는 이달에만 특별한 성능개선 없이 자동차 가격을 두 번이나 인상했다. 현대자동차와 벤츠 등 다른 완성차 업체도 잇따라 가격을 올렸다. 방아쇠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당겼고, 여기에 원자재 가격 급등이 기름을 끼얹었다. 신차 출고 지연도 빈번하다.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의 경우 이달에 계약하면 1년4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제네시스 G90은 9개월, GV60 전기차는 1년을 대기해야 한다.
테슬라는 지난 11일 모델3와 모델Y 가격을 100만~200만원 인상했다. 이어 15일에 모델3 롱레인지는 350만원, 모델Y 롱레인지는 310만원 올렸다. 불과 나흘 새 두 번이나 가격을 높인 것이다. 지난해 2월 출시 당시 6999만원이던 모델Y는 8499만원이 됐다.
현대차 상황도 비슷하다. 현대차가 지난해 한국에서 판매한 승용차의 평균 가격은 4759만원이었다. 1년 전의 4183만원보다 13.8% 뛰었다. 벤츠 C클래스는 5510만원(최하위 트림 기준)에서 올해 6150만원으로 상승했다.
카플레이션의 공습은 다른 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테슬라는 미국에서 지난해에만 무려 10여차례 가격을 올렸다. 심지어 실제 판매는 정가보다 더 비싸게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개인 고객이 구매한 신차의 87%는 정가보다 비싸게 판매됐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중국 최대 전기차 기업 BYD는 지난달에 전기차 가격을 최고 7000위안(약 134만원) 올린 데 이어 지난 15일 다시 3000~6000위안(약 57만~115만원)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지허자동차는 최근 전기차 가격을 3000~7000위안 높였고, 전기차 스타트업 링파오자동차는 모델 C11 가격을 한 번에 3만 위안(약 575만원)이나 인상했다.
자동차 가격이 급등한 배경에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 따른 신차 출고 지연이 자리한다. 코로나19로 주머니를 닫았던 소비자들이 지난해 보복소비에 나서면서 일시적으로 자동차 수요가 증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다 자동차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이 뛰면서 카플레이션을 견인하고 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전기차 배터리의 주요 소재인 니켈 가격은 지난 25일 t당 3만5555달러(영국 런던금속거래소 기준)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 29일(1만6259달러)보다 196%나 폭등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알루미늄, 팔라듐, 리튬 등의 가격도 치솟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가격 인상을 단행한 지난 15일 트위터에 “최근 원자재와 물류에서 상당한 인플레이션 압박을 받고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제조원가 상승분을 소비자가격에 전가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해 테슬라 순이익은 전년 대비 665% 증가한 66억2000만 달러(약8조777억원)에 이르렀다. 현대차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 6조6789억원을 거둬 2014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