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강조해왔던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문제가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몫으로 남게 됐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28일 만찬 회동에서 MB 사면 여부가 거론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29일 기자들과 만나 “(사면은) 우리가 제안해도 문 대통령이 안 받으면 안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면은 조율할 문제가 아니고 대통령의 결단 사안”이라며 “문 대통령이 필요성이 있으면 사면을 하고, (안 되면) 저희들이 집권하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MB 사면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에 공을 넘긴 것이다.
윤 당선인 측은 지난 16일로 예정됐던 문 대통령과의 오찬 회동을 앞두고 “MB 사면을 요청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러나 오찬 회동은 무산됐고, 28일 만찬 회동이 성사된 이후 사면에 대해선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는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문제나 추가경정예산 처리 등 다른 시급한 현안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이 임기 내 사면을 단행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임태희 당선인 특별고문 등 인수위 일부 인사들이 문 대통령의 ‘결자해지’를 요구하고 있어 청와대와 당선인 측이 사면 문제를 놓고 다시 충돌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장 실장과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29일 만찬 회동 후속 논의에 돌입했다. 장 실장은 “이번 주 이 수석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주요 현안을 놓고 청와대와 당선인 측 사이에 미묘한 시각차도 감지된다. 문 대통령은 회동에서 윤 당선인에게 “정확한 집무실 이전 계획에 따른 예산을 면밀히 살펴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당선인 측은 안보 공백을 우려하며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제동을 걸었던 청와대가 회동을 계기로 협조의 뜻을 밝혔다는 입장이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용산 이전 문제와 관련해 문 대통령도 협조 의사를 피력해주신 걸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청와대는 ‘면밀한 검토’에 방점을 찍고 있다. 윤 당선인 측이 안보 공백을 초래하지 않을 만한 이전 계획안을 제시하면 예비비 편성에 협조할 수 있지만, 이전 시기와 내용을 두고 이견이 빚어지면 예산 지원을 유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인사권도 여전히 뇌관으로 꼽힌다. 감사원이 지난 25일 ‘신구 권력의 협의 없이는 감사위원을 제청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후 윤 당선인 측은 청와대와의 인사권 갈등이 해소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아직 공공기관 인사 논의가 끝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추경 처리는 비교적 수월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도 2차 추경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추경 규모를 놓고는 진통이 예상된다. 윤 당선인은 대선 전부터 50조원 규모의 추경을 내세웠지만, 재정 당국이 재원 마련의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표하는 상황이다.
박세환 구승은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