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TSMC가 미국 기업과 동등한 수준의 ‘반도체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인텔을 중심으로 미국 기업에만 보조금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TSMC는 미국 상무부의 의견 요청에 대해 “본사 위치에 따라 보조금 지급 여부를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고 반도체 업계의 현실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TSMC는 “미국은 공급망을 ‘복제’가 아닌 ‘첨단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이민 정책을 개혁해 유능한 인재들이 미국에서 혁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도 본사 위치와 상관없이 자격을 갖춘 업체들이 ‘공정한 경기장’에서 ‘동등한 인센티브’를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액을 들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기여하는 만큼 보조금 지원 대상에 들어가야 한다는 게 삼성전자와 TSMC의 생각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를 ‘안보’로 규정하고, 자국의 반도체 생산능력 확보에 무게를 싣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에도 동참을 요청해왔고, 두 회사는 이에 화답했다. TSMC는 120억 달러를 투자해 애리조나에 5나노 공정 제조공장을 건설 중이다. 삼성전자도 텍사스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를 투입해 새로운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인텔도 200억 달러를 들여 오하이오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애리조나에도 2개의 공장을 새로 짓는다.
파운드리 후발주자인 인텔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지렛대로 삼아 선두권에 달리는 TSMC, 삼성전자를 앞지르겠다는 속셈을 품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인텔이 TSMC, 삼성전자에 비해 불리한 환경에 처해 있다”면서 “미국 정부의 지원이 인텔 등의 미국 기업에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TSMC와 삼성전자는 각각 대만·한국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을 위해 미국 정부 지원은 인텔에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인이 내는 세금을 미국 기업에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도 내밀었다. 다만, 겔싱어 CEO는 최근 이런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상원은 수개월간의 논의 끝에 반도체 지원 법안을 68대 28로 다시 통과시켰다. 앞서 상원은 지난해 6월 반도체 지원을 포함한 미국혁신경쟁법(USICA)을 통과시켰고, 하원은 올해 2월 반도체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상·하원의 조율 과정을 거쳐 최종 법안을 결정하는 일만 남았다. 현재까지 상·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에는 지원에서 외국기업을 차별하는 내용이 들어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에서 상·하원 시각차가 있어 합의가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5월 안에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분석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