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살세툰] 50년전 신촌 홍합탕 빚, 빛이 되다

입력 2022-03-30 00:06
밥이 되고 답이 되는 아살세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50년 전에 빚진 마음이 많은 이에게 빛을 주는 마음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담았습니다.

2021년 10월 25일, 서울 서대문경찰서 신촌 지구대에 한 통의 편지와 2000달러의 수표가 도착했습니다. 뉴욕에 사는 70대 교포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는 50년간 죄책감을 갖고 살았다는 한국에 거주하는 친구를 통해 돈을 기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촌파출소 황영식 지구대장의 설득으로 그의 선행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하네요.

“존경하는 신촌 파출소 소장님께”라고 수신인을 밝힌 편지는 “저는 미국 뉴욕에 사는 72세의 직장에서 은퇴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편지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인사로 시작됩니다. 이후 내용은 그의 편지 일부를 발췌해 적겠습니다.

1970년대 중반 저는 강원도 농촌에서 올라와 신촌에 살던 고학생이었습니다.

어느 겨울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신촌 시장 뒷골목에서 손수레에 홍합을 파는 아주머니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허기가 져서 염치도 없이 “돈은 내일 가져다드릴 테니 한 그릇을 먹을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중 한 분이 선뜻 자기 손수레에서 뜨끈한 홍합 한 그릇을 퍼주셨습니다. 그 아주머니에게 너무도 고마웠고 잘 먹기는 했습니다만 다음날이라고 제게 무슨 돈이 있었겠습니까?

너무 늦었지만 어떻게든 그 아주머니의 선행에 보답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소장님께 이런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기 2000불 체크를 동봉하오니 지역 내에서 가장 어려운 분께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제공해 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너무도 작은 액수라 부끄럽습니다만 그 아주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속죄의 심정으로 부탁드리니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거주하는 A씨가 2000불과 함께 전달한 편지. 신촌지구대 제공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미국 이민길에 오른 뒤에도 모락모락 김이 나는 홍합탕 한 그릇을 서슴없이 내어준 아주머니의 마음을 잊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기억은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50년 전 홍합 한 그릇의 ‘빚’에 커진 죄책감만큼 선행의 ‘빛’이 더해져 더 많은 이들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큰마음이 되었습니다.

그가 청년이던 때의 신촌과 현재의 신촌은 많이 변했습니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배곯는 청년에게 선뜻 홍합탕을 내주신 아주머니의 마음은 오늘날 백발의 노인이 된 청년의 선행으로 다시금 기억되었습니다.

이 사연을 본 누리꾼들은 “갚을 만큼 성공하신 삶을 축복한다” “선행이 선행을 낳았다.” “마음의 빚을 더 큰 사랑으로 베풀었다.” 등의 댓글을 남기며 화답했습니다. 이런 따뜻한 사연을 전달받은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또 따스함을 선물할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글·그림=이유민 인턴기자, 아살세 기사=원태경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