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 “전염병이 모든 사회적 변화 촉발”

입력 2022-03-28 17:22 수정 2022-03-28 17:24
작가 오르한 파묵. 민음사 제공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은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미리 본 듯 소설 ‘페스트의 밤’을 썼다. 지난달 국내에 책을 출간한 파묵은 28일 국내 언론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오랜 세월 동안 전염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건 우리에게 형이상학적인 것을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며 “소설에서 페스트 창궐 당시 인간 영혼의 반응,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서술했다”고 밝혔다.

수십년 간 전염병에 관한 작품을 고민하다가 작품의 출간과 팬데믹이 맞아떨어졌다. 그는 1901년의 페스트를 소재로 소설을 쓴 이유에 대해 “서양인 여행가들이 쓴 회고록에서 ‘페스트가 발생했을 때 아시아인들이 운명론자 같은 태도를 취한다’고 쓴 내용을 읽었다”며 “그러나 과거 자료를 읽다보니 동양주의나 운명주의에선 관심이 멀어지고 방역 적용의 어려움, 방역과 격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페스트는 오스만 제국 그리고 영국을 제외한 세계의 모든 제국의 붕괴 시기와 맞아떨어지고 있었다”며 “소설에서 페스트는 반란을 이끌어내면서 민족주의의 부상, 제국의 붕괴 후 작은 국가들의 탄생, 그리고 모든 사회적 변화를 촉발시킨다”고 설명했다.

소설 집필 중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그는 현실이 소설과 흡사해 오히려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킬까 우려하기도 했다. 파묵은 “소설에서 성지순례자들이 격리 조치에 맞서는 사건이 나온다”면서 “성지순례를 하고 돌아온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기사를 터키 신문에서 읽었는데, ‘페스트의 밤’에 묘사된 것과 꼭 같았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소설 수정작업도 이뤄졌다. 파묵은 “제가 집요하게, 남들 모르게 ‘바늘로 우물 파듯’ 발견했던 부분들이 갑자기 사방에 알려졌고, 신문에서 언급하는 사건이 되기 시작했다”며 “격리에 대해 길게 설명했던 부분을 축소하려고 애썼다”고 돌이켰다.

소설과 현재 사이엔 100년이 넘는 간극이 있지만 전염병에 대응하는 인간의 반응이나 상황은 닮아있다. 과거와 지금의 다른 점은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정보의 양이다. 그는 “페스트 대 유행 때는 세 명 중 한 명이 죽었지만 지금은 치사율이 100분의 일, 200분의 일, 혹은 300분의 일로 감소됐음에도 처음에 아주 두려워했다. 우리가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과거엔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파묵은 인터뷰에서 팬데믹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푸틴의 공격은 아주 원시적이며, 중세적인 행동”이라며 “어떤 의미에서 중세가 다시 도래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파묵은 “한국에서 제 작품이 사랑 받는 것이 너무나 좋다. 앞으로도 한국 독자들이 작품을 계속 읽어 주기를 바란다”며 “팬데믹이 끝나면 한국에 가서 박물관들도 다시 방문하고 , 거닐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