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미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으로 공식 규정했다.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겨냥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러시아를 겨냥한 제재에 나섰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매일같이 끔찍한 참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개국 기밀정보 동맹체인 파이브아이스(Five Eyes)의 고위 인사는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로이드 분노(roid rage)’를 앓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로이드 분노란 분노 조절 장애 등의 뇌 질환을 동반하는 스테로이드 약물 부작용을 가리킨다. 그는 해당 질환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급격히 비대해진 푸틴 대통령의 외모와 변덕, 주변 사람들과의 과도한 거리 유지 등으로 보아 스테로이드 과다 복용이 의심된다는 주장이다. 인적 자원에 의존한 정보라는 점을 밝히면서도 푸틴 대통령의 사고 능력과 의사 결정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역사에 알려진 통치자들은 정신병을 자주 앓았다. 유럽에서 가장 넓은 로마제국을 다스렸던 젊은 황제들은 편집증과 조현병, 정신이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악명이 높았던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Ga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는 어려서부터 작은 가죽 군화를 신고 다녔다 하여 ‘칼리굴라(Caligula·작은 군화)’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는 20대 때 뇌염에 걸려 정신 이상 증세가 악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젊은 황제 칼리굴라의 변화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칼리굴라라는 이름만 들어도 타락, 변태, 정신이상을 떠올릴 정도였다. 도둑질하다 잡혀 온 사람의 손목을 잘라 목에 걸게 한 후 황궁에서 열린 만찬회에 등장시켰던 일화는 꽤 유명하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뒤를 이어 소련의 통치자 자리에 오른 이오시프 스탈린은 심한 편집증 환자였다. 전문용어로 망상장애라고도 하며 현실 세계의 사건이나 현상과 동떨어진 망상을 진실로 믿고 집착하는 정신병의 일종이다. 스탈린은 1922년부터 1953년까지 집권하는 동안 약 2500만여 명을 숙청했다. 그는 누구도 믿지 않았기에 모두가 정적이 될 수 있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국민의 8분의 1을 제거한, 공포정치의 포악한 독재자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외에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재위 1714∼1740)는 가족들을 향해 무차별 폭력을 휘둘렀다. 유아 세례를 받는 첫째 아들의 머리에 갑자기 왕관을 눌러 씌우다가 상처를 입혀 감염으로 죽게 했으며, 심한 매질을 견디지 못한 황태자가 외국으로 탈출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의 원인은 바로 통풍이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결국 정신이상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건강염려증을 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병에 걸려 생을 일찍 마감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죽기 전까지 지극히 정상이었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 독가스에 노출되어 일시적 시력 상실을 겪었다. 그는 자신이 평생 시력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화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정치인의 길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만약 히틀러가 시력을 잃지 않았다면 독일 현대사에 등장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질병은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에는 미미하다. 수많은 역사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히틀러를 최악의 학살자로 몰아간 원인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연구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육체적 질병이나 정신적 질환은 찾을 수 없었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봤던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 개념을 언급했다. 심각한 질병이 없는, 의학적으로 건강 상태가 매우 정상적인 사람도 극단적 만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의미다. 히틀러의 병력 전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히틀러에게 질환이 있었느냐에 대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치당의 대표이자 독일제국의 총리, 독일군의 수장이었던 히틀러의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사리 분별도 가능한 상태였다.”
배규빈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