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키예프) 외곽에서 수도를 점령하려는 러시아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우크라이나군의 격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격전지 현장을 취재한 르포 기사에서 전투가 끝난 곳곳에 파괴된 러시아군 탱크 잔해와 전사자 시체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고 보도했다.
NYT가 취재한 지역은 침공 초기 키이우로 쇄도하는 러시아군 기갑부대를 우크라이나군이 끈질긴 저항 끝에 물리친 곳이다. 지역 이름은 보안 유지를 위해 공개하지 않았다.
이 지역을 방어해온 우크라이나군 제72 기갑여단의 술림(40) 부사령관은 “러시아군이 네 차례나 이곳에 왔다”며 “러시아군이 다시 이곳에 오게 하라. 우리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차들을 앞세운 러시아군이 지난 2일 마을 외곽의 고속도로를 통해 키이우 접근을 시도했지만, 매복해 있던 우크라이나군이 미제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로 행렬을 기습했다고 설명했다.
NYT는 전투 현장을 묘사하며 재블린 미사일을 맞은 러시아군 T-90 전차의 포탑이 9m 이상 날아갔고, 차체는 아예 산산조각이 난 상태였다고 전했다.
러시아군 T-72 전차 1대와 불에 탄 장갑차 5∼6대의 잔해도 있었다. 장갑차의 철제 문짝들은 폭발력을 이기지 못한 채 사방으로 튀어 나갔고, 바닥에는 러시아군 병사의 목에 걸려 있던 인식표와 가방, 불탄 시신 일부가 발견됐다.
술림 부사령관은 이곳에서 러시아군 병사 시신 10구를 발견해 우크라이나군이 5구를 운구했으며, 나머지는 주민들이 매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아직도 이 마을에서 불과 4마일(약 6.4㎞) 떨어진 곳에 있다고 했다.
NYT는 취재 도중에도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이어졌고, 인근 숲에 포탄이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두 번째로 방문한 마을은 전선과 1마일(약 1.6㎞) 거리여서 러시아군을 겨냥해 쏘는 우크라이나군 저격수의 총성이 들릴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일부 주민은 마을에 남아 가축을 돌보며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었다.
이번 전쟁으로 가축 절반을 잃었다는 농부 발레리(62)는 “모든 게 파괴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근처 숲에서 러시아군 정찰병과 맞닥뜨렸다가 간신히 풀려난 적이 있다고 했다.
집에서 불과 몇m 떨어진 거리에 러시아군의 이스칸데르 탄도 미사일이 떨어졌다는 유리 유네비치(51)는 벽이 휘어지고 천장이 일부 파손되는 등 “마치 파도처럼 모든 것이 날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지배 아래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거부한다면서 “여긴 우리의 땅”이라고 강조했다.
안명진 기자 a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