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긁어 부스럼’ 만든 바이든 즉흥 발언… 외교가 발칵

입력 2022-03-28 07:26 수정 2022-03-28 08:00

조 바이든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한 교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권 교체를 말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고 답했다. 전날 연설에서 “이 사람(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이 정권 교체를 의미한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내던진 푸틴 대통령 권력 유지 불가 발언 파문은 확산하고 있다. 러시아에 분노한 여론은 그의 발언을 지지하고 나섰지만, 외교 전문가들은 해결책 마련에는 도움이 안 되고 긴장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옥사나 마르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이날 NBC 방송에서 “러시아가 전범이 이끄는 테러리스트 국가라는 건 우리에게 분명하다.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푸틴이 문명 세계에서 집권을 유지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제 존슨 전 국토안보장관도 “푸틴은 전범이다. 무고한 시민과 어린이를 학살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집권해서는 안 된다”며 “(백악관은) 사실에 대한 진술이라고 설명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 연설 직후 “러시아에서 푸틴의 권력이나 정권 교체를 논의한 건 아니다”는 설명 자료를 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다.

마크 워너 민주당 상원 정보위원장도 “유럽에서 정권 교체를 시도한 사람이 있다. 그건 우크라이나 정권을 바꾸려 한 푸틴”이라며 바이든 발언을 옹호했다.


반면 그의 발언을 비판하는 쪽은 긴장 악화 우려를 걱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자신의 권좌를 전복시키려 한다는 두려움을 오랫동안 품어 왔는데, 바이든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이를 공식화하면서 그의 염려를 ‘사실화’했다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미국 대통령 입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푸틴은 갈등을 확대하거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총력을 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리처드 하스 외교협의회 회장도 “축출과 체제 변화는 푸틴의 가장 큰 두려움”이라며 “(바이든 발언은) 푸틴이 어떤 타협도 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이든의 애드리브가 전 세계적인 소동을 일으켰다”며 “푸틴은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러시아 선전의 일부로 사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패트릭 윈투어 가디언 외교 편집장은 “미국을 ‘제국주의적 깡패’로 묘사하는 데 능숙한 러시아 정부에 매우 필요한 선물이었다”며 “터키, 카타르, 중국과 같은 위기 중재자들이 푸틴 대통령을 설득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마이크 왈츠 공화당 하원의원도 “바이든 대통령의 명백한 말 뒤집기가 그의 신뢰성을 손상한다”며 “이는 푸틴의 선전 기계에 영향을 미치고, 실제로 푸틴을 내부적으로 더 강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이 외교적 노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비판도 많았다. 마이클 오핸런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감정적인 면에서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러시아 정권 교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아마도 금방 일어나지는 않을 일”이라며 “전쟁 종식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푸틴과 협상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유럽 동맹에서도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 발언에 대한 논평을 요청받자 “외교를 통한 휴전과 러시아군 철수를 원한다”며 “나는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이 러시아의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딤 자하위 영국 교육장관도 “(정권 교체는) 러시아 국민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국민이 결정할 일”이라며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 국민이 원하는 통치 방식을 결정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반면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매우 분명한 연설이었다. 폭탄을 사용한 건 푸틴이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옹호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줄리앤 스미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재 미국 대사 등은 거듭 발언 진화에 나섰다. 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블링컨 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하거나 침략을 할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우리는 다른 어떤 (국가의) 정권교체 전략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줄리앤 스미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재 미국 대사도 CNN방송에 나와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만나고 들은 일에 대해 인간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