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 때문에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지난해 12월 23일에 헌법재판소의 중요한 결정이 하나 있었다.
성폭력범죄처벌법은 미성년 성폭력범죄 피해자가 조사 과정에서 진술한 것을 녹화한 영상물을 가해자가 동의하지 않아도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었다. 이 법은 미성년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해 받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003년에 도입되었으나, 실무에서는 잘 쓰이지 않다가 2008년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실무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 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헌재는 그 이유를 ‘영상물에 수록된 미성년 피해자 진술은 사건의 핵심 증거인 경우가 적지 않고, 이러한 진술증거에 대한 탄핵의 필요성이 인정됨에도 이 법은 진술증거의 왜곡이나 오류를 탄핵할 수 있는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헌재가 이 법에 대해 ‘단순 위헌’이라고 결정함에 따라 이 법 조항은 즉시 효력을 상실했다.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가까스로 떠올려 가며 고통스럽게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영상을 이제는 더 이상 재판에서 증거로 쓸 수 없게 되면서 피해자는 직접 법정에 출석해서 증언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가해자가 무죄를 받을 가능성도 생겼다. 어린 피해자가 성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재판과정을 거치면서 겁에 질려 진술의 일관성을 잃게 된다면 신빙성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법은 2013년에도 헌재의 심판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헌재는 “아동의 진술은, 암시에 취약하고 기억과 인지능력의 한계로 인해 기억과 진술이 왜곡될 가능성이 큰 특수성이 있으므로 법정에서의 반대신문보다는 사건 초기의 생생한 진술을 그대로 보전한 영상녹화물을 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더 효과적이고 아동보호라는 공익적 가치가 더 크다”는 이유로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이 법을 위헌으로 선고되도록 만든 사건을 보자.
2010년과 2011년에 대구에 살던 8살 아동은 담임교사에 의해 수차례 성추행을 당했다. 담임교사는 착한 일을 했으니 칭찬을 해주겠다며 아이를 교실에 혼자 남도록 지시했고, 학용품을 주겠다고 집 앞에 찾아가기도 했다. 2년에 걸쳐 교실과 자동차 안에서 성추행 및 유사성행위가 이어졌는데, 재판과정에서 피해아동의 수사에서의 영상녹화 진술이 법정에 제출돼 유죄의 증거로 사용됐다. 결국 1, 2심과 대법원 모두 담임교사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판결까지 확정된 이 사건에서 담임교사는 진술 영상이 증거로 사용된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2018년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고 이번에 헌재가 위헌을 선고한 것이다. 이번 위헌 결정으로 담임교사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되었고 피해 아동은 그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할 것이다.
담임교사의 재심 사건에서 이 피해 아동에게 다시 악몽을 떠올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국회 차례다. 시급히 대체 입법을 해야 한다. 국회도 이제 국민을 보호하는 일 좀 하자.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