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열이형” 불렀던 박범계, 尹과 오랜 인연 재조명

입력 2022-03-27 18:29 수정 2022-03-28 02:56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가 예정됐던 법무부 업무보고를 유예한다고 밝힌 24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보고를 앞두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오랜 인연이 재조명되고 있다.

박 장관은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인 윤 당선인에게 한때 “윤석열 형”이라고 부르며 친근한 관계임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랬던 신뢰 관계가 악연으로 바뀐 지금, 윤 당선인이 취임한 후에도 야당 정치인으로서 첨예한 대립각을 이어갈지에 관심이 향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캡처

2013년 “윤석열 형은 의로운 검사”

박 장관은 2013년 윤 당선인의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한 이후인 11월 페이스북에 “윤석열 형을 의로운 검사로 칭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과 검찰의 현실이 슬프다”는 글을 썼다. 같은 글에서 자신을 ‘범계 아우’로 낮춰 부르기도 했다.

그는 이 글에서 “작년 국회의원 됐다고 서초동 어디선가 동기 모임을 했을 때도 불과 10여분 아무 말 없이 술 한 잔만 하고 일어났던 형”이라며 “그제야 제가 정치적 중립성을 해할 인자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또 “검사는 범죄혐의를 발견하면 수사를 개시해야 한다는 형소법을 따르고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정한 검사가 될 것을 선서로 다짐한 것을 지켰을 뿐인 형”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그런 (석열이) 형에게 조직의 배반자, 절차 불이행자로 낙인찍는 검찰의 조직문화가 아직도 상하로 여전하다면 대한민국은 ‘이게 도대체 정상적인 나라야?’라는 비난과 자조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아직 정의로운 검사들이 이 땅에 여전하고 그들은 조용하지만 이 사태를 비분강개할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표를 내선 안 된다. 범계 아우가 드리는 호소”라며 글을 맺었다.

당시 윤 당선인은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수사팀장으로서 보고 누락을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상황이었다.

2016년 “윤석열, 정의의 칼 들고 돌아온다”

박 장관은 윤 당선인이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특검 수사팀장으로 임명될 당시 민주당 인사 중에서도 앞장서서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는 그해 12월 1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윤석열 특검 수사팀장! 그가 돌아온다. 복수가 아닌 정의의 칼을 들고…”라며 기쁨을 표했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20명의 파견 검사를 지휘할 수사팀장으로 당시 대전고검 검사이던 윤 당선인을 특검에 파견해 줄 것을 법무부와 검찰에 요청했을 때였다.

윤 당선인은 적폐청산 수사를 이끌면서 ‘촛불 혁명’의 공신으로 평가받았고,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19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했다.

윤 당선인에 대한 박 장관의 호의적 평가는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후보자 시절이던 2019년 7월까지 이어졌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윤 당선인을 향해 ‘검찰개혁 적임자’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2020년 10월 대검찰청 국정감사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왼쪽)과 의원이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2020년 “자세 똑바로 앉으라” 尹에게 호통

박 장관과 윤 당선인이 공식 석상에서 처음 대립한 것은 2020년 10월 대검찰청 국정감사 때였다. 윤 당선인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와 문재인정부의 원전 수사를 진행한 이후 두 사람의 관계에 균열이 생겼다.

당시 의원 자격으로 참석한 박 장관은 “윤석열의 정의는 선택적 정의”라며 검찰총장이던 윤 당선인을 몰아세웠다. 그는 윤 당선인이 서울중앙지검장 재임 시절 전파진흥원 수사 의뢰 건을 보고받지도 않고 무혐의 처분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윤 당선인은 “그것도 선택적 의심 아니냐”면서 “과거에는 저에게 안 그러지 않았느냐”고 맞받아쳤다. 자신에 대한 호의적 태도가 급변한 점을 언급한 것이다.

박 장관은 또 옵티머스 사건을 거론하며 윤 당선인에게 “이런 허술한 무혐의 결정을 할 수 있느냐. 피해자의 눈물이 보이지 않느냐”고 날을 세웠다. 박 장관의 질문이 쏟아지자 윤 당선인은 “허, 참”이라며 허탈한 표정으로 짧게 탄식을 뱉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박 장관은 윤 당선인에게 “자세를 똑바로 앉으라”며 호통도 쳤다.

2021년 “尹과 개별적 친분 없어”

박 장관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해 1월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윤 당선인과의 사적 친분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임 장관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 당선인과 수사지휘권, 검찰 인사를 놓고 극심한 갈등을 벌이다 떠난 후였다.

당시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 총장과의 친분으로 검찰개혁에 주저할 우려가 제기된다”고 묻자 “일반적인 의미의 동기로서의 친분이면 모를까 특별하고 개별적인 친분이 있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는 단 1의 사적인 감정이나 정서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박 장관은 “문재인정부 ‘마무리 투수’로서 검찰개혁을 완결하는 것이 소명이다. 법복을 벗었을 때부터 검찰개혁이라는 화두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라며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중회의실에서 기자들과 약식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장관 수사지휘권 필요” 尹 공약 반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두고 박 장관과 윤 당선인의 마찰은 계속되는 중이다. 인수위는 지난 24일 오전 예정돼있던 정무사법행정분야 법무부 업무보고를 당일 아침 취소했다. 박 장관이 전날 윤 당선인의 핵심 사법 공약에 반대 견해를 밝힌 것이 이유였다. 인수위 업무보고를 하루 앞두고 윤 당선인의 공약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박 장관의 언행이 도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23일 약식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책임행정 원리에 입각해 있다”며 “아직 수사지휘권이 필요하다는 입장은 여전하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했고, 검찰의 독자적 예산편성권을 주겠다는 윤 당선인 공약에 대해서도 “입법이 필요한 사안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위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주장해 온 윤 당선인의 평소 철학과 대치되는 부분이다.

윤 당선인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통해 검찰을 민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보다 정권에서 임명한 장관이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다고 보고 있다. 독자적인 예산편성권 확보와 직접수사 확대 등 검찰권 강화 의지를 거듭 밝혀왔다.

법무부의 인수위 업무보고는 오는 29일로 다시 조율됐다. 한 차례 업무보고 일정을 유예 당한 박 장관의 법무부가 업무보고에 수사지휘권 폐지에 반대하는 기존의 입장을 포함할지 주목된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