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만찬 회동이 대선 19일 만에 전격 성사된 것에는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이 해소 수순에 접어든 영향이 크다.
지난 16일 예정됐던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오찬 회동은 현재 공석인 감사원 감사위원 2명의 인선을 두고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이 충돌하면서 불발됐다. 청와대는 법에 따라 1명 이상의 감사위원을 임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윤 당선인 측은 최재해 감사원장을 포함한 3명의 감사위원이 ‘친민주당’ 성향이라고 주장하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문 대통령이 친민주당 성향의 인사 1명을 감사위원으로 추가 임명할 경우 의결정족수 4명을 채워 감사원이 새 정부 출범 이후 국정 운영에 발목을 잡는 정치적 감사를 할 것이라는 게 윤 당선인 측의 우려였다.
양측이 접점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청와대는 지난 21일 윤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23일에는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 인사의 사전 협의 여부를 두고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이 진실 공방을 벌였다. 신구 권력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회동 무용론까지 제기됐다.
그러다 감사원이 직접 나서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감사원은 2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된 논란이나 의심이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 측과 협의를 거치지 않고 감사위원 임명을 시도할 경우 해당 인사를 제청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감사위원은 감사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감사원이 사실상 윤 당선인의 손을 들어주면서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이 기 싸움을 벌일 필요가 사라졌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27일 “큰 짐 하나가 사라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양측은 이번 회동과 관련해 의제를 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사전 교감과 의제 구분 없이 두 분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신구 권력의 첫 대면 자리인 만큼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과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과 임기 말 공공기관 인사 문제 등 현안들이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만나서 대화를 하다 보면 우리가 맞부딪치고 있는 국내적인 문제, 안보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국민께 의미 있는 결실을 전해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회동에서 문 대통령에게 50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에 대한 협조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 편성 문제도 논의될 전망이다. 또 이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 문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등 남아 있는 공공기관 인사 문제 등도 거론될 가능성이 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