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하락 책임져”…수십억 연봉 최저임금으로 깎는 CEO들

입력 2022-03-28 06:00
기우성 셀트리온 대표이사가 지난 25일 인천 연수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셀트리온 제공

국내 상장사 최고경영자(CEO) 사이에서 ‘주가가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최저임금만 받겠다’는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주가의 과도한 급락에 뿔난 주주를 달래기 위한 시도다.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던 CEO의 임금 삭감은 주가 부양 및 책임 경영 의지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회사가 달성하려는 주가가 증권사 목표치마저 상회하는 경우가 많아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우성 셀트리온 대표이사는 지난주 열린 주주총회에서 주가 하락에 대한 책임을 지고 최저임금을 받겠다고 밝혔다. 주주들이 주가가 35만원으로 오를 때까지 최저임금을 받고 근무할 것을 요구하자 기 대표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 25일 기준 셀트리온의 종가는 16만5500원이다. 렉키로나주 같은 신약의 저조한 성과와 회계 감리 문제 등으로 지난 1년 새 주가는 49.92% 폭락했다.

기 대표는 “주가가 언젠가 제자리에 가겠지만 주주들이 힘든 결과를 만든 것에 경영자로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수령에) 동의하겠다”고 말했다.

쪼개기 상장과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먹튀’ 등 논란으로 주가가 급락한 카카오 그룹사에서도 최저임금 선언이 연이어 나왔다. 남궁훈 카카오 신임 대표 내정자는 지난달 사내 게시판을 통해 “주가가 15만원이 되는 날까지 법정 최저임금 수준의 연봉만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스톡옵션도 그 가격 아래에서는 행사하지 않겠다고 했다.

신원근 카카오페이 대표 내정자는 20만원을 목표주가로 제시했다. 회사 주가가 20만원이 되기 전까지 모든 보상을 받지 않고 최저임금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카카오와 카카오페이지는 현재 각각 10만5000원, 14만1500원이다.

지난해 기 대표는 셀트리온에서 17억원을, 남궁 내정자는 카카오에서 61억원을 보수로 받았다. 이들이 시간당 9160원의 최저임금을 받는다면 연봉은 약 2297만원으로 줄어든다. 연봉 수십억원이 기약 없이 깎이게 된 셈이다.

주가 하락에 책임을 지고 CEO가 수십억원의 연봉을 반납하는 모습은 소액주주의 늘어난 영향력을 방증한다.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 소액주주는 191만명이 넘는다. 49만여명이 보유한 셀트리온도 회사에 적극 목소리를 내는 강성 주주들이 포진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회사가 제시한 목표주가를 짧은 시간에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이 목표주가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2배 이상 올라야 한다. 카카오와 카카오페이도 각각 42.8%, 41.3% 상승해야 한다.

이는 주요 증권사들이 실적과 업황을 고려해 정하는 적정 주가보다도 높다. 키움증권은 셀트리온의 목표주가로 23만원을, SK·이베스트·유안타증권은 카카오 목표주가로 12~13만원을 제시하고 있다. 연내 수차례 금리 인상이 예정된 만큼 금융시장 환경도 주가에 유리하지 않다. CEO의 최저임금 선언이 주가 부양으로 이어지려면 실적 및 성장세의 터닝포인트를 만들거나 자사주 소각 등 직접적인 주주 환원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