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지지’ 폴루닌·자하로바, 예상대로 이탈리아 공연 취소

입력 2022-03-26 00:05 수정 2022-03-26 01:36
세르게이 폴루닌(왼쪽)과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폴루닌 페이스북-ⓒTimur Artamonov

세르게이 폴루닌(32)과 스베틀라나 자하로바(42). 발레계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지지자로 유명한 두 스타 무용수가 4월 이탈리아 밀라노 공연을 취소했다. 두 무용수가 그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여론의 요구에 침묵을 지켰던 만큼 공연 취소는 이미 예상됐었다.

폴루닌은 9~10일 아르침볼디 극장에서 제정 러시아를 망하게 한 괴승 라스푸틴을 소재로 한 ‘라스푸틴’을 선보이고, 자하로바는 9일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리는 발레리나 카를라 프라치 타계 1주기 갈라 공연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르침볼디 극장은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폴루닌이 아킬레스건 부상 때문에 공연을 못한다는 연락을 해왔다고 전했으며, 라 스칼라 극장은 지난 23일 지금 상황(우크라이나 사태)을 고려해 자하로바와 협의 끝에 출연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 다큐멘터리 ‘댄서’로 잘 알려진 폴루닌 지난 2018년 인스타그램에 푸틴의 얼굴을 문신한 가슴 사진을 올리며 러시아 국적 취득 소식을 알린 바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출신이지만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등에서 혁명과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부도덕하다”고 비난하는 등 푸틴을 지지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아르침볼디 극장은 폴루닌에게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혀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다. 이에 폴루닌은 “(이번 전쟁에) 혼란스럽다”고만 대답한 뒤엔 극장 측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11일 아킬레스건 부상을 보여주는 엑스레이와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병원의 진단서를 보내면서 수술 때문에 올해는 무대에 서기 어렵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일부 해외 언론은 폴루닌의 갑작스런 부상이 공연 취소를 위한 핑계 아니냐는 의심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엘리시움 서커스 극장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르침볼디 극장은 결국 4월 9~10일 공연은 내년 1월 28~29일으로 연기하는 한편 6월 1일 폴루닌과 하기로 했던 또 다른 갈라 공연은 아예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대신 4월 7~8일 국제적인 발레 스타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지원 자선 갈라’ 공연을 개최하고, 8~10일엔 우크라이나의 서커스 퍼포먼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공연을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지난 2월 8일부터 이탈리아 투어 공연을 돌던 우크라이나 키이우 엘리시움 서커스 극장의 작품으로 무용수와 곡예사 등 30명이 출연한다. 투어는 당초 3월 13일 종료됐지만, 이탈리아 극장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난민이 된 단원들을 돕기 위해 잇따라 공연을 유치하고 있다.

시대를 대표하는 무용수에게 주어지는 ‘프리마 발레리나 아졸루타’의 칭호를 받은 자하로바 역시 폴루닌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출신이지만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마린스키 발레단을 거쳐 볼쇼이 발레단 수석무용수인 자하로바는 2011~2019년 러시아 두마(연방의회 하원)를 두 차례 역임할 만큼 푸틴 지지자로 유명하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남부 크름(크림)반도를 침공 및 합병을 지지했던 그는 ‘푸틴의 발레리나’로 불린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자 인스타그램 등 SNS에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가 넘쳐났지만, 자하로바는 아예 비공개로 돌려놓은 뒤 묵묵부답 상태다. 이런 태도에 그의 남편인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의 미국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이 현지 여론 악화로 취소되기도 했다. 결국, 예상대로 그는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리는 갈라 공연에도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 앞서 라 스칼라 극장은 ‘푸틴의 친구’로 불리는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에 대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공식 입장을 요구했지만, 답변이 없자 예정됐던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지휘에서 하차시키는 등 관계를 청산했다.

한편 9일 라 스칼라 극장의 카를라 프라치 타계 1주기 갈라 공연에는 자하로바 외에 또 다른 러시아 스타 발레리나가 출연할 예정이었다가 취소했다. 바로 지난 16일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였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판한 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으로 이적한 올가 스미르노바다. 스미르노바의 경우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이적 후 첫 작품인 ‘레이몬다’에 출연하면서 불참하게 됐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