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보다 4배 큰’ 한라산 사슴 “일본·중국서 온 외래종”

입력 2022-03-25 11:39 수정 2022-03-25 14:27
제주에 서식하는 붉은사슴. 18개의 붉은사슴 아종(亞種, 같은 종이지만 다른 지역에 살며 조금씩 다르게 생긴 생물) 중 제주 서식종은 중국 쓰촨사슴과 가장 근연인 것으로 확인됐다. 오장근 박사 제공

제주 한라산 일대에 서식하는 사슴은 일본과 대만, 중국에서 유입된 꽃사슴과 붉은사슴류인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제주 고유종인 노루에 비해 몸집과 집단 규모가 커 개체군 증가 등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제주도세계유산본부 연구진이 제주시와 서귀포시로부터 연구 목적에 따른 일시 포획 허가를 얻어 한라산과 중산간(해발 200~600m) 일대에 서식하는 사슴 21마리의 조직을 분석한 결과 꽃사슴 9마리와 붉은사슴 12마리로 확인됐다.

이중 꽃사슴은 유전자 분석에서 일본 큐슈에 서식하는 야쿠시마꽃사슴과 대만꽃사슴의 아종(亞種, 같은 종이지만 다른 지역에 살며 조금씩 다르게 생긴 생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야쿠시마꽃사슴의 경우 일본 야쿠시마 지역으로부터 최근 유입된 개체로 추정됐다. 대만꽃사슴의 경우 지리산에 서식하는 종과 동일 모계에서 유래한 집단으로 최근 국내에 도입된 후 다시 제주로 유입돼 서식하는 것으로 판단됐다.

붉은사슴은 중국 쓰촨성과 티베트 남동부에 분포하는 붉은사슴종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라산 일대에 서식하는 사슴류 계통을 유전학적으로 분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에서 확인된 꽃사슴. 오장근 박사 제공

제주에는 19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 고유종인 대륙사슴이 서식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해수(害獸) 구제 정책을 추진하면서 육지부와 마찬가지로 제주에서도 대륙사슴은 종적을 감췄다.

이후 1990년대 사슴 사육이 늘면서 농장에서 탈출한 개체 등이 번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2011년 제주도의 또 다른 조사에선 사슴류의 서식 지역이 넓어지고 개체 수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되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성판악 등산로 등 해발 1500m 이상 지역을 포함해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일대와 사려니숲길 주변, 어승생수원지 인근 목장에서도 사슴이 관찰됐다.

문제는 사슴 개체군이 급증할 경우 제주 고유종인 노루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슴은 성체의 무게가 60~100㎏로 노루보다 몸집이 3~4배 가량 크다.

무리의 구성도 사슴은 15~20마리 내외로, 5마리 안팎이 움직이는 노루보다 집단 규모가 크다.

속리산국립공원에서는 방사된 대만꽃사슴이 계속 늘어나면서 산양, 노루 등의 서식을 위협해 문제가 되고 있다.

연구를 진행한 오장근 박사는 “노루나 사슴 모두 1년에 1~2마리를 출산해 번식력의 차이는 없지만 먹이나 서식지 경쟁에선 사슴이 우위를 점한다”며 “제주는 고립된 도서지역으로 사슴 개체 군이 증가할 경우 생태계 교란 등의 여러 문제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라산 국립공원 내에 서식하는 사슴류에 대해 채식 습성, 서식지 이용, 행동 양식, 유입과 방사에 따른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관리 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